이현민
토라지는 가족

By 2019년 11월 27일8월 18th, 2021작가 인터뷰

<토라지는 가족> 이현민 작가 인터뷰

“가족 안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되려는
본능 같은 게 있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
회회적인 그림, 시적인 글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토라지는 가족』
이 책을 쓰고 그린 이현민 작가를 만나 보았습니다.


​▲ 표지 이미지

▲ 초기 섬네일

 

『토라지는 가족』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짝짝짝짝! 출간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다리고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2017년 여름쯤에 편집진과 미팅 중에 그런 선언을 했었지요. 많이 헤매고 있지만. 서두르기보다 도중에 생기는 시행착오와 감정들을 모두 받아들이며 가겠다, 이해해 주시라, 고 말이죠.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으니 그것이 제겐 가장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깔끔하고 단단하게 제본된 이 책이, 어쩐 일인지 저에겐 묵직한 덩어리처럼 느껴져요. 그동안 느꼈던 감각과 생각과 감정과 뭐, 그런 것들이 수북이 쌓인 덩어리랄까요. 그것들을 모아서 꾹꾹 눌러서 끈으로 간신히 묶어 놓은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책장을 열면, 순식간에 수없이 많은 페이지가 마술처럼 넘겨지고 또 넘겨질 것만 같아요. 바람과 빛을 일으키면서 말이죠.

 



▲ 초기 등장인물 스케치

 

이 책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요? 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주 오래전, 어떤 감정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요. 계획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그렸었고 내용도 완전히 허구였어요. 그런데 그 감정을 따라 그리다 보니 종이 위에 엄마가 나오고, 아빠도 나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동생도 그려보고 나도 그려보고, 가족들이 모두 한 화면에 등장하는 그림까지 그려 보았어요. 제목도 이 책과 같았죠. 그런데 그게 끝이었어요. 그 때 문득 든 생각이 이거였어요. 내가 그동안 가족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구나. 가족들은 정말 가깝고도 정말 먼 곳에 있구나. 그러면서 또 생각한 것이, 뭔가 이 작업은 그림만으로는 부족하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그냥 지나갔죠.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매체가 책이라면 어떨까 하고 참여하게 되었어요. 거기서 기획안으로 써 본 거예요. 왠지 그림책은 이것들을 모두 다정하고 온전하게 안아 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었죠.

​▲ 꽃밭과 누나의 다양한 채색 시도들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요?
사람 안에서 생겨나는 말 못할 감정들이 있잖아요. 뭔지도 잘 몰라서 늘 미숙하게 반응하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반복하곤 하는 것들이요. 어떻게 대처할지도 모르겠고, 훈련으로도 잘 극복이 안 되는, 작고 간질간질한 정도의 것인데 가끔씩 풍파를 일으키는 문제들이요.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는 미숙하고도 평범한 모습을 좀 그려보고 싶었어요. 무거워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가볍고, 우울할 수도 있지만 일견 웃음이 픽 날만 한 뉘앙스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런 장면이 친근하면서도 극적으로 잘 발휘될 수 있는 소재 혹은 배경으로 가족을 떠올렸다고 보는 것이 순서상 맞을 것 같아요.
왜냐면, 이 가족이란 게, 가족 안에서는 누구나 좀 아이인 것 같아요. 사회에서의 나이와 가족 안에서의 나이는 차이가 좀 나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던데… 어쨌든 후회도 많이 하고 자책도 많이 하고 또 작은 원망도 많지만 일일이 설명하지도 않곤 하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보호받고 싶고, 편하게 놀거나 자고 싶고, 뭐랄까 가장 기본적이고도 단순한 것들이 채워지길 기대하는 곳. 그런 것이 가족의 기본 속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했어요. 무언가 안심할 수 있는 곳 말이에요. 집에선 누구나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러기를 우선 바라고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바깥에서 절제되고 억눌려지는 것들이 따뜻하게 보살펴지고 허락되는 곳 말이에요. 그래서 그 안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되려는 본능 같은 게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러니 감정의 문제들이 종종 생기고 풀리고 다시 생기고 하는 것이겠죠.
이렇게 자연스레 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니 결국은, 감정의 모습과 가족이라는 두 개의 주제가 순환하고 섞이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할머니 장면 연구

 

그림책에 나오는 가족은 아빠, 엄마, 할머니, 형, 누나, 막내와 강아지입니다. 이렇게 인물들을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하진 않았고, 일단은 단서가 되는 장면들을 먼저 떠올렸어요. 재밌겠다 싶은 에피소드가 많이 있었는데, 적당한 선에서 골라내야 했죠. 인물 구성과 조합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요. 다만, 강아지는 원래는 없었는데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추가되었어요. 개연성을 조금 더 얻기 위해 등장시킨 거죠.

​▲ 좌)할머니 앞부분 표현, 우)할머니 뒷부분 표현

 

토라져버린 가족들은 자신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그림책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같은 공간인가?’ 할 정도 표현에 차이가 큽니다. 앞에는 인물들 동세나 주변 환경들이 정밀하게 묘사되었다면, 뒤에는 뭔가 많이 함축된 것 같기도 하고… 작가님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앞의 인물들 부분은 구심력이 강해요. 인물들은 홀로 등장하는 배우처럼 나오고, 그 인물들을 둘러싸고 과묵한 배경이 무대처럼 둘러 있어요. 그렇지만 그들이 집으로 순차적으로 가게 되는 장면들은 원심력이 강해요. 자신들이 머물던 자리가 드디어 어수선해지고 헐거워지면서 인물들은 스스로 거기서 풀려나요. 그리고 집이라는 하나의 방향을 가지고 이동합니다. 마음은 벌써 집에 가 있을 지도 몰라요. 각성되지 않던 시간도 조금은 속도감 있게 흐르고요. 그런 흐름이 있기 때문에 그림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흐르게 되었어요. 다른 이유도 더 있긴 하지만 그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미뤄두고 싶어요

 

▲ 가장 고민했던 장면

 

글이 매우 시적입니다. 본문 글 중에서 가장 고민했던 표현이 있다면요?
시적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왠지 칭찬처럼 들립니다. 시적이라는 말은… 음, 어찌 보면 ‘이야기에 빈틈 혹은 열린 공간이 많다‘라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요. 가족들이 토라지는 장면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당연히 기대되는) 구체적인 설명이나 상황이 제시되지 않지요. 만들어 보기도 했었는데, 그랬더니 제가 원하던 템포가 죽는 느낌이 들길래 그대로 두었죠.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장 고민했던 표현은, ‘꼬르륵! 꼬르륵! 짖어요. 쪼록쪼록! 쪼로록! 지저귀어요.’ 하는 부분이었어요. 중요한 전환점인데, 등장하는 캐릭터의 정서와 주변 상황이 서로를 환기시키면서 집으로 돌아갈 최적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는 것처럼요.’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정말 잘 먹었다는 뜻이죠 뭐. 그런데 포식했다, 잘 차려 놓고 먹었다 등과는 거리가 있을걸요. 정말 단순하고 순수하게, ‘먹는 것 자체’에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끼면서 맛있게 먹었다는 뜻으로 쓴 표현입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혹은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을까요?
특별히 그런 장면은 없어요. 없지만, 가족들이 나무 틈 사이로 줄줄이 집으로 가는 장면 있잖아요. 해가 지는 배경으로 졸졸졸 가잖아요. 그 장면 끝냈을 때가 기분이 좋았어요. 진행 과정에서만 구도며 구성이며 네 번이나 바꾸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잘 해결된 것 같아서요.

 

그림책 작업 과정에 있었던 에피소드나 어려웠던 점, 즐거웠던 점 등을 이야기해 주세요.
그림 그리다가 잘 안되면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 아무거나 몇 권 빌려다가 읽곤 했어요. 뭘 참조하거나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좋은 기분, 기운 그런 걸 좀 느끼고 싶어서요. 안 읽고 그냥 책상 위에 쌓아 두었다가 반납한 경우도 많았지만 뭔가 든든해지고 안심이 되더라고요.

 

다음 활동도 기대가 되는데요. 계획하고 있는 전시나 작품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독자들께 살짝 귀띔해 주세요.
바로 두 번째 책 작업을 이어갈 것 같아요. 텍스트와 스케치까지는 <토라지는 가족>과 함께 마쳤던 작품이니까, 너무 많이 미뤄졌죠. 1년 이내에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에게 『토라지는 가족』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나에게 『토라지는 가족』은 ( Y )이다.”
Y는 엄마가 물구나무 서 있는 모습을 본 딴 거예요. ( )가 화단 모양처럼 보여서요. 인물들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왜(why)의 소리를 상기시키기도 하고요.

 

독자들이 『토라지는 가족』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 번, 다른 속도로 읽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책을 그렇게 보거든요. 앞에서부터 보기도 하고, 뒤에서부터 읽기도 하고, 아무 데서나 펼쳐 보기도 하고요. 그림책은 그렇게 봐도 사각지대가 안 남아서 좋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늘 건강하시고요, 이 책 『토라지는 가족』도 많이 봐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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