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아, 이현민
그 형

By 2023년 11월 17일12월 4th, 2023작가 인터뷰

『그 형』 이영아, 이현민 작가 인터뷰

그 형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이

이 이야기를 읽는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표지 이미지>

 

그 형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영아)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이를 출산한 느낌이에요. 귀하고 반갑고 설렜습니다. 주변에서 생각지도 못한 환대를 해 주셔서 정말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현민) 먼저 이영아 작가님께 축하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책이 되길 기다리던 이야기가 드디어 나왔네요. 이런 과정을 떠올리다 보면 책도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져요.

원화 마감을 하고 나서도 내내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헛된 생각이지만요. 책이 나오고 나서야 진짜로 마무리한 느낌이 들었어요. 뿌듯하기도 하고 괜한 아쉬움도 남고 그렇지요.

 

 

<초기 스케치>

 

그 형모든 것이 낯선 환경으로 이사를 온 효민이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그 형 진우를 만나게 되면서, 진우의 혼란스러움과 고통, 두려움의 감정을 마주하고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그 형, 진우의 진실을 효민이의 시선에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설정을 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영아) 관찰자 시점이잖아요. 그 형의 고통을 헤아리는 것이 이 이야기를 읽는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진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썼다면 날것을 그대로 먹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이영아) 부모의 욕망이 아이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 아이가 가진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형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현민) 글의 이미지가 수없이 다듬어져서 아주 아주 단단한 느낌을 받았어요.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그런 인상이었어요. 저는 그런 밀도가 어느 부분에서든 조금 부서지고 흔들려서 숨을 쉴 구멍을 내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초기 표지 스케치 작업>

 

그 형표지 그림부터 매우 인상적입니다. 여러 겹의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를 감춘 듯한 그 형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표지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구상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었나요?

(이현민) 진우의 모습이 마치 나무 그늘 속에서 얼룩지는 그림자 같다고 느꼈어요. 초록, 노랑, 파랑, 보랏빛이 교차하는 나무 그늘 그림자요. 시차를 두고 진우에게 자리한 멍 자국들이 살짝살짝 햇빛에 현상되는 느낌이랄까요. 한편, 효민이의 기억 속에서 진우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생각해보았어요. 아마 또렷하고 분명한 모습은 아니었을 거예요. 효민이에게 진우라는 아이는 완전하게 공감하고 다가갈 수는 없는 영역의 감정, 경험 자체니까요. 거부하거나 꺼리는 영역의 존재이기도 하겠죠. 그러니 흔들리고 흐릿하며 어렴풋한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요.

 

전작 편의점에 이어 그 형에서도 가정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아낸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영아) 이 이야기들은 사실 제가 만난 한 아이가 모두 겪은 이야기예요. 운동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대걸레로 맞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그대로 글을 썼더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이를 구할 방법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두 명의 아이로 고통을 나눴어요. 『편의점』의 범수와 『그 형』의 진우로.

 

<초기 아이디어 노트>

 

의지가 되어야 하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할 아버지가 행사한 폭력은 진우의 몸과 마음을 상처 입히고, 진우가 아버지에게 받은 고통과 혼란스러움, 초조함 등은 고스란히 효민이에게 전달됩니다.

이는 어른은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귀결되는데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영아) 어른은 한때 아이였잖아요.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른이자 곧 부모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책 속에서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우등생이었던 진우의 그림자를 알아본 이는 효민이뿐이었지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왜 쉽게 알아볼 수 없었을까요?

(이영아) 너무 쉽지요. ‘관심’입니다.

 

<초기 채색>

 

다채로운 빛의 색감과 거친 붓 자국으로 표현된 풍경들의 모습이 장면마다 책장 가득 펼쳐지는데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이현민) 아크릴 물감에 물을 흥건하게 적셔서 운용성과 투명도를 높였어요. 종이가 크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붓의 흔적은 크고 거칠게 도드라집니다. 재료들의 물성과 몸의 움직임이 그림에 고스란히 남는 것이 이 작품에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지시적이고 설명적인 그림이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세부적인 부분이나 배경을 자세히 그리지 않은 대신 구도나 시간대, 온도, 계절감 등을 떠올려 보면서 그렸습니다.

 

한 장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스케치와 채색 수정 과정이 있었을 텐데요. 그림을 그리며 완성만족이란 지점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현민) 매번 달라서 얘기하기 힘들어요. 돌이켜 보면, 저는 다양한 스케치나 수정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렴풋하게나마 그리고 싶은 내용과 이미지가 정해지면 직접 그려 나가고,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리는 식이니까요.

스케치와 색칠을 할 때 단계를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한 붓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냥 제 버릇이죠. 이리저리 헤매듯 많이 그려보다가 꽤 간결한 붓질로 단번에 정리될 때가 있어요. 대개 그런 때, 마음에 들고 하나의 그리기가 끝이 납니다.

 

<초기 스케치>

 

효민이와 진우가 느끼는 감정과 시선을 담아내며 두 아이가 바라보고 느끼는 집과 학교 등의 주변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작업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이현민) 이 책에서 두 아이는 각자 다른 결핍과 불안이 있고, 그것이 서로 잠시 이어지고 통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고 비껴가고 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배경이나 정서를 약간은 쓸쓸하고 낯설게 이끌어 가려고 했습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이영아) 책의 맨 앞장에 도입부로 삽입된 대목 “손을 뻗어 모래를 집었다. (…) 눈물이 났다.”입니다. 이 부분은 한 번도 수정하지 않고 단번에 썼던 대목이기도 해요. 효민이가 형을 대하는 태도, 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현민) 동네 악동 녀석들이 효민이와 만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설정이 악동들만 아니라면 참으로 평범한 장면이기도 하죠. 운동장에서 혼자 철봉에 매달린 아이며, 그 주변에 모여든 몇몇 아이들이 제멋대로 있는 모습. ‘운동장’이라는 말에서 떠올릴 수 있는 많은 감정을 최대한 상상하면서 그렸습니다.

 

<초기 스케치>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이영아) 진우가 3층에서 뛰어내린 뒤 몸에 입게 될 상처의 수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몸의 상처가 곧 마음의 상처와 같은 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죽음까지 생각했다가 머리를 다치는 것에서 결국 다리만 다치는 설정으로 바꿨습니다.

(이현민) 진우가 샤프를 들고 창문에 앉아 있는 장면이에요. 저는 이 장면이 위기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실은 정반대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진우가 들고 있는 샤프가 마치 오후의 하늘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로켓처럼 보이도록 했지요. 억눌린 감정을 보상하거나 혹은 바깥으로 투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진우가 내면에 갖고 있던 순수한 꿈같은 것이요. 저는 샤프가 가지는 기계적인 이미지, 날카롭고 빛나는 금속의 성질이 보통의 남자아이들이 선망하는 어떤 욕망, 취향, 놀이나 꿈같은 것을 대변할 수 있는 상징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를 바랐거든요. 진우가 지지 말고 그 꿈을 지켜나가길 바랐어요. 샤프로 놀이를 하는 모습을 통해 그런 잠재된 희망을 담고 싶었습니다.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이영아) 저는 모든 인물이 다 애착이 가요. 다 필요하고, 다 중요하더라고요. 모든 사물까지도요.

 

지금도 주변에서 진우와 효민이와 같은 일상을 버티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시선과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영아) 우리는 모두 진우와 효민이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 왜 변하게 될까요…. 아이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되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초기 채색>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이영아) 정말로 3층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쓰면서 크게 깨달은 게 있어요. ‘체험하지 않는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느 프랑스 작가의 말인데요. 그 말이 실감 났어요. 모두 제가 경험했던 그 무엇이었어요. 예를 들면 철봉에 매달린 것, 개미를 키운 것, 축구를 했던 것 등이요.

(이현민) 작업이 꽤 빨리 끝날 줄 알았어요. 편집자님들께서 기존의 제 그림들을 보시고 먼저 이 작업을 제안해 주신 것이라서 그저 장면만 구상해서 그리면 될 줄 알았던 거죠. 작업 초반에는 흑백의 단색조 그림이었어요. 이렇게 저렇게 세 번 정도 바꿨고 결국 지금처럼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이영아) ‘독자가 있는 작가’입니다. (다른 작가분의 말씀을 빌려 적습니다.)

 

나에게 그 형(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이영아) “더 나은 내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현민) “운동장”입니다. 유년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나의 뒷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작업했습니다.

 

독자들이 그 형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영아) 동화책을 읽는다는 건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게 됩니다. 『그 형』을 읽고 이전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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