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이영아, 이소영 작가 인터뷰
자연이 겨우내 다가올 봄의 생명을 잉태하듯이
우리도 고요히 쉬고 힘을 채우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표지 이미지>
『겨울나기』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영아) 반갑고, 고맙고, 기쁩니다. 책이 되기까지 고래뱃속 대표님, 편집자님, 이소영 그림 작가님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이소영) 오래 기다려 주신 이영아 작가님과 출판사에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더불어 묵힌 만큼 속 시원하기도 하고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겨울나기』의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영아) TV에서 방영된 불우 이웃 돕기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앞니가 빠진 어리숙한 아빠와 초등학생이 살아가는 장면을 보았어요. 그때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마구 자라났습니다.
『겨울나기』 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소영) 첫 느낌은 먹먹함이었습니다. 태수의 외로움, 엄마에 대한 그리움, 태수를 향한 엄마의 태도가 겨울 그 자체였어요. 혹독한 마음의 계절을 보내는 태수의 심리를 겨울 풍경과 어우러지게 표현하려 했습니다. 특히 김 서린 버스 창문에 ‘문래동’, ‘엄마’, ‘태수’라고 쓰는 장면에 강한 시각적 메타포를 느껴서 이 부분을 제일 먼저 드로잉했던 것 같습니다. 뿌옇고 축축하고 어두운 색 톤과 그 사이로 어스름히 빛나는 헤드라이트, 가로등 빛 등은 태수와 함께 있는 아빠의 사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초기 이야기 구상>
태수와 주변 어른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영아) 처음 태수와 아빠를 만들고, 굵은 줄기 하나를 정합니다. 주제 같은 거죠. 나머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쓰기 시작하면서 생겨요.
『겨울나기』를 쓰시면서 영향을 받은 사건이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영아) 체험하지 않는 허구는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체험한 모든 것들이 내재되어 있다가 변주되어 태어나는 거 같아요. 교회 3층 복도나 문래동, 딱지치기 등. 체험은 석유처럼 지층에 자리 잡고 있는 혼합 퇴적물 같다고 생각해요. 어떤 생각과 만나 빼고 보태지면서 원하는 글이 되는.
<초기 채색>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나요?
(이소영) 수채화와 물에 녹는 흑연 가루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과슈도 일부분 사용했고요. 제가 자주 애용하는 습식 수채화 기법도 들어가 있습니다.
『겨울나기』 속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이영아) 책의 50페이지 이후 장면은 처음 원고를 마무리했을 때 없었어요. 태수가 그림을 그리려고 붓과 물감을 찾는 장면이 끝이었어요. 그런데 결말이 임팩트가 없고 상투적이어서 많이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뒷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듭니다.
(이소영) 그림 작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아마도 가장 만족스럽게 나온 컷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에 태수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버스 정류장 장면이 있습니다. 겨울 아침의 색 톤이 잘 나왔고, 예상 밖인 엄마의 문자 메시지로 더없이 슬퍼지는 책 내용과 정반대로 그림은 평온하게 표현된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대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샘플 채색>
그렇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이영아) 가장 공들인 장면이라기보다 가장 안 써지는 부분이었어요. 엄마가 태수를 안 만나 줘야 이야기가 되는데 그 이유를 못 찾았어요. 태수가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려면 그만한 동력이 필요한데 말이죠. 태수와 갈등이 없는 엄마가 태수를 안 만날 이유가 없잖아요. 다행히 오래 생각하니까 해결이 되더군요.
(이소영) 위에서 언급했던, 가장 먼저 드로잉했던 버스 내부 장면입니다. 물을 흠뻑 머금은 겨울 창의 질감, 창밖의 풍경의 가독성, 차갑고 어두운 밤거리와 따뜻한 버스 내부의 대조되는 느낌 등 많은 부분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한 번에 그려 나가야 했기에 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책 속의 겨울은 단순히 날씨만을 의미하지 않죠. 『겨울나기』 속의 겨울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이영아) 겨울은 외롭고 어둡습니다. 자연이 겨울을 피해 갈 수 없듯이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삶에도 늘 겨울이 옵니다. 자연이 겨우내 다가올 봄의 생명을 잉태하듯이 우리도 고요히 쉬고 힘을 채우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채색>
『겨울나기』 속의 겨울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셨나요?
(이소영) 태수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마음을 꾹꾹 누릅니다. 자연스럽게 움츠리고 생각은 많아지지요. 『겨울나기』의 겨울은 터지기 일보 직전의 응축된 상처 주머니 같았습니다. 태수도 일부러 외투에 목도리를 둘둘 말아 웅크린 느낌을 줬고, 배경은 먹구름처럼 붓 터지를 응어리지게 하여 번지는 효과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태수를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이영아) 믿음직스러워서 그냥 미소만 지을 거 같아요. 미술관에 함께 가든지요.
(이소영) 계절은 돌고 돌 뿐, 계절 자체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사실 태수의 겨울은 힘들지만 아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니 이 시기를 잘 견뎠으면 하는 마음으로 안아 주고 싶습니다.
<초기 스케치>
『겨울나기』에 등장하는 ‘오천 원짜리 왕 딱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인데요, 이야기 속 ‘오천 원짜리 왕 딱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영아) 권력이며 물질적 불평등이 가져온 현대판 신분 제도를 상징합니다.
태수의 ‘그림 그리기’와 같이, 작가님의 ‘겨울나기’ 법은 무엇인가요?
(이영아) 산책과 책 읽기입니다. 그러면 다시 정신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소영) 저도 태수처럼 그림 그리며 속의 ‘화’를 좀 푸는 편입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나 흥미로운 효과를 발견하면 ‘화’는 사라지더군요. 요새는 식물을 키우며 불안과 화를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분갈이를 하면 좀 차분해지더라고요.
<초기 채색>
『겨울나기』는 독자의 감정적 몰입과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해 보이는데요, 이야기 안에서의 감정적인 측면을 다루는 데 있어 작가님만의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영아) 캐릭터가 잡히면 그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일지 감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요. 또 평소에 주변 사람들을 잘 관찰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이야기가 품은 고유한 정서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데에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소영) 그 이야기의 고유한 정서가 저와 맞는 원고를 택하는 게 노하우인 것 같아요. 작가와 이야기가 맞지 않으면 그리는 일 자체가 꽤 힘든 작업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겨울나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면이나 그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소영) 작업 내내 수시로 봐 가며 중심축 역할을 했던 그림은, 태수가 급식 먹는 반쪽짜리 그림과 아침에 엄마에게 가는 버스 정류장 그림입니다. 색 톤과 표현 방식, 얼굴 표정, 의상 등등 기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나기』를 통해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가요? 결말에 담긴 의미도 궁금합니다.
(이영아) 욕심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제 글이 닿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늘 바랍니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태수처럼요.
<초기 스케치>
『편의점』, 『그 형』에 이어 담담한 문체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세 번째 이야기네요. 주제를 선정하는 기준과 그것을 대하는 작가님의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이영아) 저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거 같아요. 일종의 씨앗이에요. 그다음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요. ‘무엇을’ 쓸 것인가 결정되면 기뻐요. 비록 뜻대로 써지진 않아 답답하지만 계속 붙들고 있으면 마침내 써지니까요.
다음으로 새롭게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영아) 늑대 이야기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둘 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요. 하하.
다음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어떤 그림 방식이나 캐릭터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가요?
(이소영) 이제까지 주로 수채화를 많이 사용해 왔는데, 불투명한 재료의 효과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초기 스케치>
“나에게 책 『겨울나기』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이영아) 나만의 창(窓)이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을 인정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창.
(이소영) 버스 타면 생각날 책.
마지막으로, 『겨울나기』의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영아) 『겨울나기』를 읽는 것이 독자분들에게 좋은 일이면 좋겠습니다.
(이소영) 『겨울나기』는 저와 이영아 작가님의 두 번째 작업입니다. 이영아 글 작가님은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른 못지않은 아이들의 아픔을 탁월하게 풀어내시는 것 같습니다. 동화에서 큰 줄기는 이야기이기에 그림을 잘 봐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요, 단지 태수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늘 주변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독자분들께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