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연
마을을 바꾼 장난

By 2018년 03월 28일8월 17th, 2021작가 인터뷰

<마을을 바꾼 장난> 승정연 작가 인터뷰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늘 꿈꿔요.”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마을을 정감 넘치는 따뜻한 마을로 바꾼
숨겨진 주인공을 찾는 재미가 있는 그림책,
『마을을 바꾼 장난』을 쓰고 그린 승정연 작가를 만나 보았습니다.

 

▲ 표지 이미지

 

작가님!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더 나은 이야기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고민하느라 출간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는데요. 책을 받아본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웹툰을 연재하는 게 벅차서 고래뱃속 출판사 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틈틈이 시간을 내어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도 구성과 그림을 계속해서 바꾸는 저를 또 기다려주셨고요. 첫 그림책 도전이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따듯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도 많이 기다렸을 것 같은데요.
다들 축하해주었습니다. 몇몇 친구들과 사촌 언니는 그림책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쑥쑥 자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제게 후기를 들려주었는데, 남편보다도 아이가 그림책 내용을 훨씬 더 잘 이해하더라는 후기가 재미있었어요.
가족들도 무척 즐거워하고 계세요. 특히 부모님께서 친구들에게 선물하신다며 책을 많이 사고 계신데, 이제 그만 선물하셔도 될 것 같다고 제가 말리고 있을 정도예요. 물론 늘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감사하고 든든하답니다.

 


▲초기 아이디어 섬네일

▲기법 연구

▲더미북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7년 전부터 함께 살고 있는 반려묘 ‘쿤’이 어린 시절 자꾸만 가출을 해서 이웃집에 숨어든 일이 계기가 되었어요. 원룸 오피스텔에 살던 때였는데, 한 층에 열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제가 집에 들어가려고 현관문만 열면 녀석이 재빨리 튀어나와 복도를 질주하다가 문이 열린 집이 있으면 쓩 하고 들어갔죠. 특히 여름에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조금씩 열어둔 집이 많았는데 쿤이 들어오자 이웃들이 놀라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고 예뻐하기도 했어요.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타도 인사조차 안 하던 낯선 이웃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지내게 됐어요. 특히 한 집에는 마침 아기 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쿤이가 그 아기 고양이를 너무나 예뻐하더라고요. 이후로 고양이들끼리 형제처럼 가까워졌고, 그분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가 그 집고양이를 맡아 지금까지 계속 함께 살고 있어요.
고양이라는 소재 외에도 ‘소통’이라는 주제를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책꽂이에 꽂아두고 자주 꺼내보았던 그림책이 있었는데 제목이 ‘단추 수프’였어요. 추운 겨울에 마을을 떠돌던 한 부랑자가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자 단추 하나로 마을 사람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수프를 끓여주겠다고 선언하고, 사람들이 호기심에 모여 지켜보다가 조금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감자 하나, 무 하나, 당근 하나씩을 보태면서 아주 훌륭한 단추 수프를 완성해 다 함께 나눠먹는 내용이었어요. 며칠 전에도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니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닮은 구석이 보이더라고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따듯하게 느꼈구나, 새삼 알게 되었어요.

 

장면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그 이유는요?
표지로 쓰인 자동차 밑에서 바라본 장면이 가장 애착이 가요. 그림책 계약을 한 후 좀 더 좋은 장면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어요. 고양이들의 시점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사진을 찍어댔죠. 의자 밑에서 본 풍경, 오토바이나 자동차 바퀴 사이에서 본 풍경, 건물 난간 위를 걸어 다니며 본 풍경, 지붕 위에서 본 마을 풍경, 옷장 위, 냉장고 위에서 본 집안 풍경 등을 카메라로 담아 그림책에 반영했어요. 특히 자동차 밑을 찍으면서 이거다, 싶었어요. 처음 본 자동차 하부구조가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고, 어두운 차 밑 그림자 속에 숨어 밝은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심정도 조금 느꼈고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사실 표지로도 쓸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표지 일러스트 작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출판사 디자이너 선생님께서 아이디어를 내주신 덕분에 그 장면이 표지로 채택됐는데, 지금도 아주 만족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반대로 아쉬운 장면도 있었나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는 풍경을 멀리서 본 장면이 조금 아쉽습니다. 가장 임팩트 있어야 하는 장면인데 제가 원한 것보다 덜 재미있게 그려진 것 같고 나무 위에서 고양이가 보고 있다는 느낌도 생각만큼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더 풍부한 재미를 표현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다양성’,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한 사람 한 사람에 의미를 담아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은 즐거웠어요. 한두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라 불리는 사람들도 피부색, 나이, 성별, 직업이나 성격, 인물 간의 관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최대한 다양하게 그리려 노력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취재

▲수정 섬네일

▲채색 연구

 

작업 과정 중 어려웠던 점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작업을 한창 하고 있는데 조카가 태어났어요. 여자아이인데, 선물을 고민할 때마다 무심코 ‘여자아이다운’ 물건에 눈이 가는 제 자신을 보고 놀랐어요. 그제야 제 그림책도 무심결에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주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여성 캐릭터들의 다수가 치마, 분홍색, 토끼 인형, 액세서리 같은 요소와 연결되어 있고 남성 캐릭터들의 다수가 양복, 푸른색, 공룡 인형, 사무용품 같은 요소와 연결되어 있는 걸 그제야 깨달은 거예요. 남자 가사도우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가가 이래선 안 되는데, 싶어서 조금씩 수정을 해나갔습니다. 옷차림이나 소품, 대사, 표정, 태도를 조금씩 바꾸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어요. 하루에 하나씩 제 고정관념을 발견하는 느낌이에요. 제 조카가 크면서 제 그림책을 보게 될 걸 생각하면 앞으로도 더 많이 신경 쓰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당신의 하우스헬퍼>로 헤럴드 웹툰 대상을 수상하고 이미 이 시리즈를 시즌 3까지 연재한 웹툰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림책과 웹툰이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웹툰이 들려주는 느낌이라면 그림책은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웹툰은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슥슥 쉽고 빠르게 보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림은 조금 가볍게,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연출하게 되더라고요. 또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하기 때문에 때로는 즉석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듯이 정신없이 그려질 때도 있고, 내 생각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작은 에피소드였던 것을 길게 늘리기도 해요. 댓글을 보고 ‘아 이 부분은 좀 더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싶으면 부족한 장면과 연출을 나중에 보충해 넣기도 하죠. 그럼 독자들이 댓글로 ‘아, 그래서 그랬구나! 베일에 싸였던 비밀이 드디어 밝혀졌다.’며 피드백을 주고요. 그런 점이 대화하는 느낌, 들려주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그림책은 공들여 오랜 기간 준비해 완성한 것을 짜잔~ 하고 보여주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댓글처럼 피드백을 곧바로 하기 힘들다는 점도 대화보다는 ‘카드’나 ‘엽서’로 편지를 보내는 느낌이랄까요. 기다리다 보면 한 번씩 답장 같은 피드백을 듣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엽서, 카드, 편지를 받는 느낌이라 기쁘고 반갑답니다.
<채널 예스> -『당신의 하우스헬퍼』 웹툰 작가, 승정연 인터뷰 http://ch.yes24.com/Article/View/26875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림책,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그림이 들어간 대중문화에 푹 빠져 지냈죠. 하지만 재능도 끼도 없다고 생각해서 미대에 갈 용기를 못 내고 집에서 가까운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했어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진로 고민을 계속하다가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마지막으로 만화를 배워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좀 늦었지만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해서 만화 스토리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를 거쳐 그림책 작가까지 한 발짝씩 내딛는 중입니다.

 

나에게 <마을을 바꾼 장난>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나요?
‘모두가 주인공’이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한 주인공에게 제대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늘 꿈꿔요. 그래서 웹툰 <당신의 하우스헬퍼> 시즌 1도 앞 에피소드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한 사람이 다음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는 구조의 단편 모음집이고요. <마을을 바꾼 장난>도 이야기를 완성하고 보니 주인공이 과연 누구일지 조금은 모호하다고 느껴질 수 있겠더라고요. 이 사람도 주인공 같고, 이 아이도 주인공 같고, 이 존재도 주인공 같고… 저는 그런 점을 좋아하는데 독자분들은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림책 <마을을 바꾼 장난>도,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웹툰 <당신의 하우스헬퍼>도 지켜봐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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