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찌
게으르미

By 2024년 05월 02일작가 인터뷰

『게으르미』 설찌 작가 인터뷰

게으르다고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냥 오늘은 게으를 수도 있는 거예요.

<표지 이미지>

 

게으르미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랫동안 혼자서만 알고 있던 비밀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어 떨리면서도 속 시원한 기분이 들어요. 작업 기간 동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여러 일이 있었는데요. 그런 감정들이 담겨 있는 저의 성장일기 같기도 하고요. 결론적으론 훨훨 날아갈 것 같아요!

 

게으르미는 게으름을 맘껏 피우고픈 르미의 하루하루를 사랑스럽고 유쾌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새로 만든 제 명함을 고래뱃속 대표님께 드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저의 명함이니 제가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게으르미’의 시그니처 포즈를 가진 캐릭터를 넣게 되었죠. 어릴 적부터 저의 포즈이기도 하고요. 대표님께서 이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제안하셔서 여러 이야기를 덧붙이다가 『게으르미』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초기 스케치>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주인공 르미가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엉뚱하면서도 재미있기 때문이지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양새와 성격 등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르미’는 제가 투영된 캐릭터라서 저도 모르게 저를 그리게 된 것 같아요. 대학생 시절 저는 항상 르미와 같은 자세로 작업을 했어요.ㅋㅋ 누워있지만 누워있지 않은, 게으르고 싶지만 게으를 수 없었던 그 사이에서 힘들어하면서도 때로는 즐기기도 했던 모순적인 캐릭터였죠. 나름 힘든 삶에 영혼이 없는 듯하지만 눈을 들여다보면 나름 어딘지 모르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고요. 그냥 저예요. 하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들의 예상을 깨는 코믹한 반전 요소를 구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나 작업 과정이 있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초반에는 대표님과 이야기 나누다가 전래 동화인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각색해서 한번 넣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르미가 게으름의 끝을 달리다가 결국엔 소가 되는 슬픈 엔딩이 될 뻔했답니다. 디자이너님과 편집자님의 여러 의견을 듣고 해피엔딩으로 가자는 결론이 났지요. 저도 초반에 이야기를 수정할 때 너무 아쉬웠어요. 슬프지만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시 현명하신 출판사 식구들 최고 🙂

 

게으르고 싶은 마음에서 탄생하는 르미만의 기발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마음이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님께서 전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게으르다고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냥 오늘은 게으를 수도 있는 거예요.

게으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게으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각자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한숨 고르고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섣불리 게으르다고 치부하지 말아요.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게을렀다면 이제 슬슬 일어나 걸어 봐요!

 

<채색 작업>

 

작가님에게 게으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상을 지내시면서 난 여기까지 게을러 봤다!’라는 경험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어릴 때는 정말 누워있던 적이 많았어요. 그게 게으름이었는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요. 그래도 남들 눈에는 게으름으로 보였고 저조차도 그렇게 느꼈었죠. 지금도 누워있는 걸 제일 좋아해요!

저에게 ‘게으름’이란 해야 할 일을 잠시 회피하고 불안한 채로 누워있는 것? 같아요. 그게 요즘 저의 게으름인 것 같아요.ㅋㅋㅋ

앞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방학 때 누워서 티브이나 휴대폰으로 예능이나 가벼운 영상을 보는걸 좋아했는데, 3-4일 넘게 머리도 안 감고 뒹굴면서 라면과 과자를 먹고 지낸 적도 있어요. 일주일이 넘어가면 엄마의 한심한 눈빛과 잔소리가 시작되죠.ㅋㅋ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장면이 항상 고민이 많이 돼요. 그래서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재밌게 그려야 하니 재밌게 그릴 수 있는 요소를 넣게 되죠. 첫 장면은 게으르미의 성격이 가장 잘 보이는 장면이지요. 게으르지만 주눅 들지 않는 르미만의 당당함도 생동감 넘치는 컬러로 표현하려고 고민을 많이 한 만큼 참 좋아하는 장면이랍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장면이에요.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한 번에 끝났지만 뭔가 작업하는 내내 마음에 쏙 들지 않고 제 마음속에서 아직까지도 정리되지 않는? 그런 아쉬움이 있어요. 이유가 뭘까 하고 계속 고민하고 들여다봤지요. 결론은 나지 않았고 다시 수정한다고 해도 마음에 들게 나올 것 같지 않았어요. 게으르미를 작업했던 2023년의 저의 역량은 거기까지였던 것으로 마무리했답니다. 아쉽지만 이제 놓아줘야죠! 마지막 장면의 게으르미처럼!

 

<채색 작업>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유성 색연필을 기반으로 밑 작업을 했고 후반 작업을 디지털로 병행했습니다.

 

책을 작업하시면서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잘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그래서 컬러도 신경을 많이 썼고요- 한 장면에 너무 몰두해서 신경을 쓰다 보면 큰 틀을 놓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출판사 식구분들 덕분에 잘 헤쳐나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특히 게으르미 표정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표정이 게으르지만 흥미로워야 했거든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야 하고 그렇다고 우울해 보이면 안되고요. 이목구비가 조금만 틀어져도 게을러 보이지 않아서 표정을 작업 제일 마지막에 그렸어요. 그 상황을 저도 회피하고 있었던 거죠.ㅋㅋㅋ

표정을 그리기 전마다 잠시 소파에 누워서 심신을 가다듬은 적도 많았답니다.

 

<채색 작업>

 

게으름을 털어낸 듯 아닌 듯, 몸을 일으킬듯 말듯한 르미를 통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결말에 다다랐을 때, 작가님께서 숨겨두신 마지막 장면에 담고 싶으셨던

의미가 궁금합니다.

게으르미는 자신이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 누군가가 게으르다고 부를 뿐이지요.

계속 ‘나는 게으르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어딜 가든 당당해요.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일어나게 되고 곧 깨닫게 되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많이 게을렀구나.’ 게을러 보이게 행동했던 그녀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해가 되나 봅니다.

 

작가님의 기억 속에서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던 순간과, 눈을 뜨고 한 걸음 내디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는지 움직임이 많이 없어요. 작업도 겨울에는 잘 못 하고 누워있게 된답니다…ㅋㅋ 심적으로도 차분해져서 아이디어도 잘 안 나오고요. 재작년 1월엔 내내 누워있고 무엇을 하든 집중이 안 되던 시간이 있었어요. 한동안 누워있는 삶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요. 계속 누워만 있으니 몸이 더 힘든 거예요- 1월의 마지막 날쯤 햇살이 밝게 빛나던 날이었는데, 그날 읏쌰! 하고 나가서 햇볕도 쬐고 사고 싶었던 책도 샀지요. 그때부터 기운을 잘 차려서 다시 힘을 낸 것 같아요.

 

<디지털 작업>

 

지금도 어딘가에서 맘껏 게으르고 싶거나, 게으름을 만끽하고 있는 다양한 게으르미들에게 작가님께서 전하고 싶은 말이나 응원, 조언 부탁드려요.

누워있는 날이 있으면 일어나 있는 날도 있는 거죠! 열심히 달리고 난 다음 날에 힘들다면 쉬어도 괜찮아요.

꾸준히 조금씩 게을러 주세요! 나에게 게으름을 선사하라!ㅋㅋㅋ

 

작가님께서 쓰고 그린 전작 선물에 이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 또 하나의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과 그림 작업을 해 오셨는데, 계속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과 동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선물』 작업은 저의 의지라기보다는 편집자분이 손을 내밀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타인에 의해 시작된 작업이라 책이 주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여러 권의 책 작업을 하면서 책의 매력을 알게 되었지요.

『게으르미』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재밌기보다는 막막하고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나오니 ‘아 이제 내 이야기가 들어간 책을 많이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더라고요. 이전까지는 책을 만드는 과정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것 같아요. 저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보이는 겉모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그림이 어떻게 하면 예쁘게 보일지에 치중했던 것 같고 책의 중심인 이야기는 보이지도 않았었죠.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의 글이 있는 책에 그림을 더 많이 그렸을지도 몰라요.

요즘은 저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바로 적고 어떻게 하면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게으르미로 인해 그림책 작업에 진심이 되어버린 저예요…하하.

 

<채색 작업>

 

나에게 게으르미(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나 자신!’

 

독자들이 게으르미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장씩 넘기며 ‘르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우리 게으르미들, 오늘쯤은 게을러도 괜찮아!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