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
벅스 ABC

By 2023년 04월 13일작가 인터뷰

『벅스 ABC』 난주 작가 인터뷰

보도블록 틈새에서 작은 풀과 곤충들이 서로 도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생명이 깃든 모든 존재가

하루하루 충실히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표지 이미지>

벅스 ABC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한 장면 한 장면 그릴 때는 ‘과연 끝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마무리되어 책으로 묶이니 뿌듯했어요.

 

<초기 작업 과정>

전작인 문장부호가 꽃과 씨앗, 열매 등 식물의 모습을 담은 책이었다면, 이번 벅스 ABC는 다양한 곤충들이 주인공인 책이죠. 식물과 곤충을 아우르는 자연에서 주로 영감을 받으시나요? 자연의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리는 늘 사람 위주로 보고 듣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그렇지만 가만히 둘러보면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깔아놓은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작은 풀과 곤충들이 서로 도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생명이 깃든 모든 존재가 하루하루 충실히 자기 역할을 해내며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감동적이에요.

그래서 자꾸 자연에 눈이 가요.

 

문장부호나 알파벳, 한글 등의 문자를 그림과 이야기에 녹여내 책으로 엮는 발상은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문장부호의 경우 지친 귀갓길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쉼표가 떠올랐고, 무심히 지나치던 문장부호의 의미를 새삼 발견하게 되어서, 문장부호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뒤부터 문장부호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이 쉼표랑 비슷하다고 느꼈고, 그에 착안해서 문장부호를 닮은 여러 이미지를 떠올리다가 자연의 흐름 속에 숨은 문장부호를 생각해냈어요. 그리고 『벅스 ABC』는 알파벳 책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알파벳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쉽게 떠오르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약속 시간이 미뤄져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곤충도감을 보았어요. 그런데 잠자리의 짝짓는 모습이 알파벳 B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곤충도감을 샅샅이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 책의 초안은 글 없는 그림책이었어요.

 

<초기 스케치>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교실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오면 반 아이들 전체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는데 오히려 곤충의 입장에서 보면, 그 곤충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몸집인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우리는 우리보다도 작은 곤충을 왜 그렇게 무서워하고 싫어할까’를 생각하다 보니 곤충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낯설어서 그런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글 없는 그림책이 아니라 글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이면 그 장면에 등장하는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넣은 문장으로요. 처음 생각은 왼쪽 페이지에 우리가 왜 곤충을 싫어하는지 부정적인 단어를 찾아 문장으로 쓴 다음 오른쪽 페이지에 곤충의 좋은 점을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벅스 ABC』의 초안 그림을 전시할 때 전시장을 방문한 관장님께서 긍정적인 단어로 문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방향을 돌려 곤충도 소중한 생명이고 우리 이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쓰게 되었어요.

 

<초기 채색>

이번 벅스 ABC에 이르러 지금까지 총 두 작품을 점묘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이번 책을 작업하시면서 이전에 그리시던 점묘화와 달라진 점이나 새로운 점이 있으셨나요? 점묘화를 그릴 때 작가님만의 팁이 있으신가요?

점묘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문장부호』를 그릴 때, 중간에 그림이 번지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내수성이 있는 아크릴 잉크를 혼색해서 그렸어요. 그 당시에 저는 아크릴 잉크를 혼색하면 젤리처럼 굳어서 쓸 수 없게 된다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굳은 잉크를 씻어내고 다시 그 색을 만들어내느라 고생하다가 속도가 너무 늦어져서 수용성 잉크로 바꾸었어요. 그러니 색도 훨씬 자연스럽고, 혼색해도 잉크가 굳을 걱정이 사라진 점은 좋았는데 손에 아주 적은 양의 수분이 생겨도 그린 점들이 번져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벅스 ABC』는 『문장부호』 작업 때 그린 그림의 2배에 달하는 분량이라 전처럼 수용성 잉크를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탕이 되는 색은 시중에 판매하는 펜으로 찍고 중간 톤이나 혼색이 필요한 부분만 잉크를 만들어 펜촉으로 찍었어요

또 한 가지 더 신경을 쓴 부분은, 곤충의 삶이 밋밋하게 보이지 않게 그리고 싶었어요. 영상이 아닌 책이기에 정지된 동작만 드러나지만, 곤충을 둘러싼 환경과 어우러져 동세가 유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콕콕 점을 찍어 완성하는 점묘화의 매력을 소개해 주세요.

점을 찍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마음속의 화가 사라져서 도를 닦는 기분이 들어요.

 

<초기 채색>

작업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벅스 ABC』는 곤충도감이 아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곤충을 모델로 그렸기 때문에 곤충의 이름을 직접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알파벳에 맞는 모습의 곤충을 고르다 보니 세계에 있는 곤충을 찾아서 작업했는데 서식지가 해외인 곤충은 ‘국명’(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이 없는 경우가 있었어요. 외국 곤충은 영문명이나 학명은 있지만 국명이 없다 보니 책에 기록하기가 까다로웠어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문의 메일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모든 곤충을 학명으로 표기하는 방향과 한국곤충학회에 문의해보라는 조언이 있었어요. 한국곤충학회에 다시 문의를 드렸더니, 만약 작가가 국명이 없는 곤충의 영문 이름을 임의대로 해석하여 출판물에 기록할 경우 나중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죠. 그래서 결국 국명이 있는 곤충은 국명 표기를 하고 그렇지 않은 곤충은 영문명을 표기했어요.

 

<초기 작업 과정>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곤충이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이었어요. 곤충은 더럽고 징그러운 것이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물론 아름다움이 겉모습에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외부를 인식하는 감각기관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시각이기 때문에 곤충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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