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아기 북극곰의 외출

By 2017년 05월 12일8월 30th, 2021작가 인터뷰

<아기 북극곰의 외출> 김혜원 작가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조심스레 그림책으로 옮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올해 초, 고래뱃속에서 하얀 겨울을 닮은 그림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금방이라도 무슨 말을 할 것만 같은 아기 곰이 인상적인 『아기 북극곰의 외출』인데요.
이 책을 쓰고 그린 김혜원 작가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 표지 이미지

 

작가님이 첫 번째로 쓰고 그린 그림책 『아기 북극곰의 외출』이 출간되었는데요.
처음인 만큼 더 애틋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감을 여쭤봐도 될까요?
혼자만의 감상으로 남지 않고 이렇게 독자 분들에게 소개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출간 전에 수 차례 더미북을 만들어 보아도 인쇄와 제책 과정이 마무리되어 진짜 책의 형태로 눈앞에 놓였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른 것 같아요.
갓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궁금하네요.
언니와 동생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었어요.
모두들 신기해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김 작가라고 불려 보았지요.
또 먼저 출간된 이탈리아 아기 곰에게 보여주며 너의 형제가 생겼다고 말해 주었어요. 둘이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기 북극곰의 외출』은 이탈리아에서도 출간되었는데요. 이탈리아판과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요?
언어가 다른 것과 표지의 톤이 달라진 것 외에는 똑같아요.^^


▴이탈리아판 표지와 한국판 표지

▴이탈리아판

 

그렇죠. 그래도 문자가 달라진 것만으로도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내용을 다 아는 상태에서도 낯선 문자가 쓰여 있으니 새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평소 동물과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오그래픽 잡지도 관심 있게 보는 편이었고요. 지금은 잃어버렸는데, 잡지에 실려 있던, 타는 듯 붉게 물든 북부침엽수림(boreal forest) 사진, 그걸 오려서 작업실 벽에 붙여놓고 들여다보곤 했어요.
그 즈음에 지구온난화와 북극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어요. 다큐의 내용은 빙하가 녹아서 얼음이 쪼개지고 먹이를 찾기 어려워지는 북극곰의 생태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아기를 두고 혼자 먹이를 구하러 가는 엄마 곰은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거예요. 황량하고 드넓은 대지에 혼자 걸어가는 북극곰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어디로 가는 거니?” 하고 묻고 싶었는데, 붉은 숲 저편으로 걸어가던 곰이 나를 돌아보는 것 같았어요. 바람 소리, 차가운 공기,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땅, 녹아내리는 얼음, 성난 바다의 노래……. 그런 것들이 제 마음을 끌었어요.
자꾸만 북극곰에게 제 스스로를 투영해 보게 되는 거예요. 그때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네. 다큐멘터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군요. 저도 북극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얼음 덩어리 위에 힘없이 오도카니 앉아 있는 북극곰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제가 원래 곰 성애자이기도 하고요^^
제가 느끼는 북극곰이 가지고 있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는 그 아이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오는 것 같아요.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삶의 터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그렇게 감정이입을 했어요.
(북극곰은 잔인한 맹수인데 모 광고의 마케팅으로 탄생한 귀여운 이미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고,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요? 하고 되묻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작가님에 대해 질문할게요.
그림책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언제였나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어요. 오랜 직장 생활 끝에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게 동화 일러스트였고요. 그때부터 그림책을 알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멋진 그림책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이런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까? 가슴이 설렜어요. 최근에는 그림책을 감각으로 읽는 연습을 하면서 점점 더 그림책이 좋아지고 있어요.
이 책의 장면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그 이유는?
아기 곰이 태어나서 처음 외출에, 처음 바다 냄새를 맡고, 이끌리듯 혼자 넘실대는 바다 앞에 섰을 때예요. 엄마도 없이 낯설고 두려웠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호기심에 코를 킁킁거리는 아기 곰의 모습이 떠올라요. 제가 바다를 정말 많이 좋아해요. 잔잔하고 포근하지만 가끔은 성나서 씩씩거리는 바다.
또 한 장면은, 마지막에 여자아이가 아기 곰을 들고서 시선을 맞추는 장면이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거기 있거든요.

 


​▴김혜원 작가가 가장 애착이 가는 것으로 꼽은 장면들


아쉬운 장면도 있는지 궁금해요.
혹은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있다면요? 그 이유도 알고 싶어요.
그림을 오래 배우지도 않았고, 잘 그리는 편이 아니라서 모든 장면이 다 어려웠고, 아쉬움도 많이 남아요.
이 그림책을 그릴 때만해도 저는 장면마다 느껴지는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면에서는 계획적이지 않은 그림처럼 보여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엄마와 함께 동굴에 있는 장면은 색감 표현 때문에 주변에서 의견이 분분했었어요. 보일러 그만 틀어도 되겠다고, 동굴이 너무 뜨거운 거 아니냐고요.^^ 엄마 옆에 있을 때 가장 포근하고 따뜻했을 것 같아서 고집부리면서 그냥 그대로 했어요.

작업 기간이 꽤 길었는데요. 작업 과정 중 가장 신났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채색 방법을 고민하다가 한 번 정해지고 나서는 비교적 술술 그리게 되었어요. 그려지는(?) 경험이 신나고 즐거웠어요.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도 있겠죠?
처음 이야기를 만들 때예요. 머릿속에만 있는 느낌과 감정들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풀어내는 게 정말 힘든 작업이었어요. 내러티브가 필요했는데, 그런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었거든요. 이 과정을 넘어야만 하는데 밤에 잠도 못 자고 끙끙 앓고 정말 너무 힘들어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한 달 동안은 도서관에서 북극곰과 북극을 주제로 한 그림책과 어린이 읽기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말도 안 되게 길게 주절주절 초고를 쓸 수 있었고, 그게 다듬어져서 지금의 책이 되었어요.


▴1차 기획(2010년)과 2차 기획과 섬네일(2012년)


▴3차 기획과 섬네일(2012년)


​ ​

▴수없이 고민하고 수정한 흔적들과 마지막 장면 B컷

 


​▴이 책이 나오기까지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아기 북극곰의 외출』은 ( )이다.
빈 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신가요?
하얗게 김 서린 나의 거울

 

몹시 시적인 표현이네요. 하얗게 김 서린 나의 거울이라니.
김이 서렸다는 건 밖은 추워도 거울이 있는 내 공간은 따듯하다는 뜻이겠죠?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독자들께 살짝 귀띔해 주세요.
두 번째 그림책은 어찌 보면 제 유년의 기억인데요. 이것 역시 아이와 대상의 관계 맺음에 관한 이야기예요.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물은 비밀입니다. 멍멍!

 

앞으로 독자분들께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조심스레 그림책으로 옮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뭐지? 뭔가 어수룩한데, 그래도 느껴지는 게 있네.”라고 얘기해 주시고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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