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한, 채소
달이 사라졌다

By 2023년 11월 29일12월 4th, 2023작가 인터뷰

『달이 사라졌다』 김전한, 채소 작가 인터뷰

상상 속 세계를 잃지 않는다면

더 멋진 세상이 펼쳐진다고 믿어요.

<표지 이미지>

 

달이 사라졌다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김전한) 책 표지를 보았습니다. 환하고 둥근 달빛 속으로 소녀가 달려가고 있네요. 제 마음도 달처럼 두둥실 떠올랐어요. 그림작가 채소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요.

(채소) 기다렸던 소식이어서 출간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고, 함께 작업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달이 사라졌다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뎠던 날, 산골 마을에 사는 소녀 수남에게 찾아온 내면의 혼란과 변화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달 착륙이란 역사적 배경을 소재로 이야기를 구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전한) 1969년, 저는 일곱 살이었고, 여름이었고, 대구 미도 극장 건너편 전파사에서는 달 착륙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고, 저는 온종일 넋이 나가 있었지요.

그날 올려다본 하늘엔 낮달까지 떠 있었지요.(실제였는지, 훗날 가상 기억인지?)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훗날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것이 그날의 기억이었지요.

 

<초기 스케치>

 

달이 사라졌다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채소) 우선, 동화 삽화 작업을 해 본다는 것에 설렜습니다!

달과 자연에서 느껴지는 신령스러운 분위기와, 배경과 소품들에서 느껴지는 현실적(?)인 분위기가 서로 잘 대비되어 보일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수남이는 달의 선녀 상아에게 전해 받은 신비한 힘으로 꽃을 피우고 동물들과 대화를 하거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속 황량한 달 표면을 마주한 순간, 이유를 알 수 없이 달의 기운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와 같은 설정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김전한) 하나를 받으면 또 다른 것은 내어주어야 하는 것. 문명의 사회가 편리하고 쾌적하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과학 문명과 상상의 세계 중, 여러분들은 무엇을 선택하실 거예요?

 

<초기 섬네일>

 

1969년 여름날을 배경으로 과거의 현실 공간과, 달의 정령과 달의 궁전 등 꿈과 상상의 요소를 함께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는 작업에서 고민이 많으셨을 듯합니다.

구상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었나요?

(채소) 과거의 현실 공간과 꿈과 상상의 요소, 모두가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장면마다 깊게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미지의 세계, 상상과 꿈으로 가득했던 세계가 황량한 사막으로 눈앞에 펼쳐질 때, 그 황망함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남이처럼, 작가님에게도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김전한) 모든 것이 정확한 세상은 재미없지 않나요? 우리 일상에서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죠. 과학적으로 추적하면 그 미스터리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스터리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제가 모르는 세계의 비밀을 그대로 간직해 두는 편이죠. 그 비밀이 훗날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되겠지요.

 

달이 사라졌다는 정겨운 옛 산골 마을과 인물들의 모습이 장면마다 밀도 있게 펼쳐집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채소) 수작업보다 좀 더 자세한 묘사와 풍부한 색감이 필요했기에,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했습니다.

 

<초기 스케치>

 

이 책을 작업하면서 과거 시절의 생활 도구들이나 인물들의 옷차림과 상차림 등을 고증해 재현하는 과정이 필요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림을 구상하고 그리며 느끼신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채소) ‘아는 만큼 그려지는구나… 공부해야겠다….’

 

유년 시절, 작가님의 상상 속 달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김전한) 닭들이 뛰노는 마당이 있고, 집 뒤쪽에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달에게 소원을 비는…. 그런 집에 저는 살지 않았어요.

우리 집은 아파트였습니다. 추석날이 되면 엄마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달에게 빌었지요. 엄마는 달에게 시시콜콜 오만가지 청탁을 하였습니다.

제가 말썽부리지 않고 학교에 잘 다니기를, 집에 밥이 모자라지 않기를…. 저도 엄마의 방식으로 달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엄마를 따라 절에도 갔고 누나를 따라 성당에도 갔지만, 제 마음속 청탁의 대상은 늘 달님이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그 버릇은 남아 있습니다.

 

수남이가 마음속으로 꿈꾸고 상상해 오던 달나라와 달의 선녀 상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작업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채소) 본문에 적힌 내용(수남이가 꿈꾸는 달나라와 상아의 모습)을 전부 장면에 표현하고자 했어요.

 

<초기 섬네일>

 

우리의 현대사회는 과연 그 옛날 우리가 가슴속에 품고 믿어 왔던 꿈의 세계보다 더 나은 곳일까요?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일 수 있을까요?

(김전한) 현실 세계에서 정의는 승리하지 못할 때가 많고, 행복은 잠깐 고통은 늘~~이지요.

하지만 상상 속 세계를 잃지 않는다면 더 멋진 세상이 펼쳐진다고 믿어요.

 

전작 모든 것이 다 있다를 통해 독특하고 기이한 미래 세계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달이 사라졌다에서는 과거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우리의 삶과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든 옛날이야기를 보여 주셨는데요. 다른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작품을 살펴보면 성장과 발전, 효율성과 생산력의 가치로 물들어 가는 세상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꿈과 상상의 힘을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꿈과 상상이 가져다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김전한) 꿈과 상상의 영역은 가상이 아니라 실재합니다. 눈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이 가상이라고 여겨질 때도 있고요.

그 상상의 세계가 있었기에 우리는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믿습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수남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드러나는 주체로서의 여성입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부장이 아닌 여자아이를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는 아버지와 수남이의 서사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전한) 세상은 달보다는 태양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요. 어둠보다는 빛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그러나 빛과 어둠은 같은 무게로 공존해야 합니다.

남과 여도 마찬가지이지요. 여와 남이 더불어 살아간다면 세상의 불화가 반쯤은 해결되겠죠?

 

<초기 스케치>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김전한) 꼬리 잘려 죽은 쥐들이 달의 기운을 받고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속삭여 줍니다. ‘모든 생명은 세상에 온 이유가 있다.’

그렇지요. 하찮은 생명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모두가 우주 전체의 질량만큼이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이니까요.

(채소) ‘놋그릇에 얼굴을 들여다보는 수남 엄마’의 장면입니다.

왜곡되어 보이는 표정을 통해, 수남 엄마의 심리를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잘 표현된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김전한) ‘먼 옛날 활을 잘 쏘는 ‘이예’라는 남자와 ‘상아’라는 여자가 살았지요.

상아는 이예를 피해 달나라로 도망을 갔고, 이예는 달을 바라보며 상아를 그리워하다가 죽었지요. 남자는 ‘이태백’이라는 중국의 시인으로 환생합니다.

이태백은 달을 노래하며 호수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가 죽게 되었고

일본의 하이쿠 시인으로 다시 환생하여 달을 노래하였지요.

달로 떠나버린 상아에 대한 그리움이었지요.

세상의 모든 시인은 이예의 환생이었고 달을 노래했지만

달나라로 도망간 상아를 찾을 수가 없었지요.

이예는 미국에서 ‘암스트롱’이라는 남자로 환생하여

아폴로 11호를 타고 드디어 달에 사는 상아를 만나러 떠났지요.

산골 소녀 수남이는 이예의 사연을 다 알고 있었기에

상아가 걱정되었어요.

암스트롱이 상아를 만나서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동화책에는 어울리지 않는 톤이라 한 부분 전체를 생략하게 되었어요.

그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게 되네요.

(채소) ‘숲속의 모든 것이 창백해집니다’의 장면이요.

모든 장면이 묘사가 많고 다채롭게 채색되었기 때문에, 묘사가 적고 흑백으로 채색된 이 장면이 앞뒤 장면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초기 섬네일>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채소) 저희 이모가 작품 속 시절에, 주인공 수남이와 동갑이었습니다.

그래서 퇴근한 이모와 엄마를 옆에 앉혀두고 장면 하나하나에 대한 고증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세히 듣는 동안

이모와 그 시절을 함께 여행하는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김전한) 태양 아래에선 얌전히 입 다물고 있는 달맞이꽃.

저물녘 어스름이 되고 달님이 산등성이 너머로 스윽 올라올 때 달맞이꽃은 화알짝 피어납니다. 달님과 가장 친한 꽃이지요. 달을 맞이하는 꽃,

그래서 그 이름이 달맞이꽃이라 불리나 봐요.

 

<초기 섬네일>

 

책장을 넘길수록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의 개성 있는 모습과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난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특히 공감하며 상상하고 그린 캐릭터가 있으세요?

(채소) 수남이 부모의 외적인 모습을 묘사할 때, 저희 부모님을 떠올리며 작업을 해서 잘 표현된 건가 싶네요…!

 

나에게 달이 사라졌다(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김전한) 내 삶의 첫 이야기. 그러나 작가 생활 30년 만에 너무 늦게 세상에 나온 이야기.

(채소) ‘새로운 도전’입니다.

 

독자들이 달이 사라졌다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전한) 동화책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어요. 동화가 없더라도 아이들은 삶에서 상상의 동굴 속을 늘 걸어 다니니까요.

이 팍팍한 세상, 어른들은 대체 어디서 그 잃어버린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동화책을 많이 읽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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