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아
아들의 여름

By 2023년 05월 08일작가 인터뷰

『아들의 여름』 김근아 작가 인터뷰

가족의 이별이란, 아픔 속에서도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남깁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해 드리고 싶어요.

<표지 이미지>

 

아들의 여름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사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아마 서점에 갔을 때 책이 놓여 있는 모습을 직접 봐야 ‘아! 내가 드디어 작가가 됐구나!’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작업 과정에서 저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줬던 사람들, 출판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고래뱃속 식구 분들을 떠올려 보면, 이미 저를 한 작가로 잘 지탱해 주고 이끌어 주셨다고 생각돼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아들의 여름』에 이어서 앞으로 더 많은 그림책도 만들어 보고 그래픽 노블이나 단편 동화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예술이란 성실함과 꾸준함인데, 그러면서도 스스로 답습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저의 첫 그림책인 『아들의 여름』이 많은 분에게 닿아서 다양한 감상들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캐릭터 구상>

 

작가님의 첫 번째 그림책 작업이셨는데요, ‘그림책이란 장르를 통해 이 이야기를 만들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어릴 때, 큰 책장에 잔뜩 꽂힌 그림책을 다 읽으니 저희 어머니는 매주 새로운 그림책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신청해 주셨습니다. 저는 많은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더욱 웃기거나 무섭게 바꿔서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지요. 그렇게 밖에서 실컷 떠들고 집에 들어오면 종이에 그림을 잔뜩 그렸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사실 종이에만 그리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미술을 배우는 학생이 되었을 땐,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그림책을 많이 보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마다 다양한 개성의 그림들, 독자를 몰입하게 해 주는 주인공, 이야기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글들에 자연스레 매료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대학 졸업을 앞두었을 때, 그림책 공모전을 찾아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섬네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2년여 전 여름, 저는 다니던 회사도 퇴사하고 집에 머무르며 글과 그림 속에서만 살았습니다. 그 시기에 제가 외로움이나 우울감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는

저를 항상 믿고 응원해 준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가족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첫 그림책의 소재로 정하게 된 것은 매우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제게 주는 사랑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언젠가 더는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여름』은 그런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의 이별이란, 아픔 속에서도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남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순간에, 다른 이들에게도 제가 느낀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색연필 채색 연습>

 

환한 아침부터 노을 진 저녁까지 시간의 변화를 아우르는 하늘의 색감과 여름이란 계절의 푸르른 느낌이 아름답게 담긴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요철 없는 매끄러운 종이에 색연필로 그렸습니다. 연필로 그린 스케치를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남기고 깨끗이 지운 다음, 가장 밝은 색부터 어두운 색 순으로 겹겹이 선을 쌓아서 채색합니다. 배경이 되는 나무를 예로 들면, 레몬색으로 빛나는 부분을 칠하고 낮이면 밝은 연두색으로 테두리나 모양을 잡고 사물이나 배경을 뚜렷하게 잡습니다. 오후의 시간대를 표현할 땐 주황색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짙은 색으로 그림자가 지는 부분을 잡습니다. 그러다 중간 과정에서 노란빛을 한 번 더 살려 주죠. 그 뒤에 아주 진한 초록색이나 파란색, 빨간색으로 세밀한 부분을 강조하고, 최종적으로 어두운 남색으로 세세한 결을 살려 마무리합니다. 나무의 결과 테두리를 뚜렷하게 표현하되, 그 속에 많은 색이 조화롭고 오묘하게 담길 수 있도록 그리는 편입니다.

 

아들의 여름이야기 안에는 아버지의 빈자리 앞에 선 소년이 어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하나씩 배우고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도움을 받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작품에서 아들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요?

이야기 첫 부분에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방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거의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도끼질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며, 훗날 아버지 대신 자신이 직접 도끼질을 해야 할 날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솜씨를 바라보며 감탄했을 뿐 기술적인 조언들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아들에게 아버지란 빈자리가 상상이 안 되는 사람, 늘 내 곁에 있어 줄 거라 생각되는, 매우 듬직하고 의지가 되는 존경스러운 인물이지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아버지가 없는 여름날이 다가오고, 아들은 아버지의 도끼를 들고 아버지의 모자를 쓰고 나섭니다. 사랑하는 만큼 닮고 싶었던 아버지기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고 찾아와 주었던 겁니다.

 

<인물 디자인>

 

작가님의 마음속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아버지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대학을 갓 졸업한 뒤에 제가 그린 그림들을 한창 전시하고 다녔을 때입니다. 직접 전시 공모전을 찾아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지원을 받아서 작은 카페부터 서울에 있는 규모 있는 갤러리까지 많은 곳에서 전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그림을 싣고 이동할 큰 차를 대여하기에는 돈이 부족했고, 심지어 대부분의 전시는 그림을 설치하고 포장해서 철수하는 것까지 모두 작가의 몫이었기에, 신인 작가였던 저 혼자서는 버거웠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주말을 반납한 뒤 전시하는 곳마다 항상 그림을 실어 주시고, 전시장에 직접 못을 박고 제 그림을 걸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전시가 끝나면 그림을 포장하고 차에 실어서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전시장을 오가며 나눴던 대화들이나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느꼈던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즐거움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어른의 문턱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앞에서 저마다 시리도록 푸른 성장통을 겪게 되지요. 작가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때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낼 줄 아는 게 어른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혼자서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이켜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첫 그림책까지 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려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혼자서 해 보다가 부족하면 기꺼이 도움을 받고 그에 맞는 보답을 하고, 다음에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받은 것을 그대로 베푸는 것이죠.

누구나 항상 배워야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스스로 겸손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마음이 든든해져서

점점 더 제가 바라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인물 디자인>

 

이 책의 소년처럼, 서투르지만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저도 같은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른이 되면서 겪는 여러 아픔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장작을 패기 위해 도끼를 쥐고 나온 『아들의 여름』 속 소년처럼, 서툴러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여서 개인적으로는 ‘잠 잘 자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 잘 챙기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 장면 작업 직후 다이어리 메모>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이 책의 방향을 잡게 해준 첫 장면입니다. 구상도 끝났고 구도까지 잡았지만 색연필로 분위기와 색감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란 고민을 두고 종이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리자는 마음으로 우선 그냥 쭉쭉 그렸는데, 처음 그린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온종일 기뻤습니다. 이 그림 한 장을 통해 ‘이 느낌으로 책 한 권을 만들어 보자!’란 동기 부여도 되고 큰 힘이 났던 순간이라 첫 장면이 가장 좋습니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책 속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는 표정이 가장 고민이었습니다. 인물의 생김새가 단순하게 그려져 있어서 세밀한 표정을 잡기는 어려운데, 제가 원하는 어머니의 감정은 그리움, 슬픔과 동시에 ‘그래, 당신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란 느낌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이별했지만 어머니는 남편과 이별했지요, 그래서 다시 찾아온 아버지를 어머니가 바라보는 장면을 작업할 때 얼굴을 단독으로 그려 표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론 뚜렷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구도에 살짝 웃는 입, 내려온 눈썹으로 표현했습니다.

 

<스케치 작업 과정>

 

작업 중에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들의 여름』을 구상하기에 앞서, 저의 첫 책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설정이다 보니 현실의 제 아버지께서 서운함을 느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특이한 형태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가상의 공간과 제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생김새를 가진 아버지 캐릭터를 만들어 보았는데요. 『아들의 여름』의 출판이 결정된 직후에 저는 앞의 고민이 문득 다시 생각나, 제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보여 드리고 곧 책이 출판될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더미로 만든 책을 다 읽으신 아버지의 반응이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잘했다는 한 마디뿐이셨어요. 그래서 정말 속상하신 것은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결국 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출근하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죠. 그러곤 아버지께 이 책의 내용이 혹시 불편하시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선 이 책을 읽으신 뒤에 별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아버지, 곧 할아버지 생각이 나면서 동시에 자신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게 될지에 대한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여름』은 제가 만든 가상의 이야기이니 제가 걱정했던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셨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만든 이야기로 그 누구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았기에 다행스러웠고 한편으론, 아버지의 진심 어린 감상을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가장 원했던 부분은 읽는 분들이 이 책의 소년을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픔을 딛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연습하는 아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들이 하나하나 공감이 되고 이해가 쉽도록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차기 작품으로 구상 중이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요?

사실 이미 다음에 나올 그림책 작업을 끝내고 표지를 그리는 중입니다. 특별한 모험을 겪는 특별한 소년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인데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감성이 느껴지는 공상과학이나 ‘팀 버튼’ 감독의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겐 근래 제일 재밌는 작업이었습니다.

차기에 계획하고 있는 작업은 살짝 어두운 판타지 이야기 속에 큰 감동을 담은 책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영어로 ‘아웃캐스트(outcast)’라고 하는 특별한 소수자들을 위한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물과 배경 연습>

 

나에게 아들의 여름(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저에게 『아들의 여름』은 ‘비행기’입니다. 저의 첫 그림책인 『아들의 여름』이 저를 태우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준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아직 활주로를 달리는 중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탈 때처럼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 첫 비행을 시작으로 많은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자들이 아들의 여름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살다 보면 커다란 고비나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예상치 않게 찾아올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힘들 것을 알면서도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바라던 내일을 만드는 열쇠인 것 같습니다. 이 책 속에서 아들은 아버지 없이 맞은 여름날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서툴죠, 게다가 이제 시작일 겁니다. 아마 처음 겪는 일들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고, 처음은 늘 어렵겠죠. 어쩌면 익숙했던 일도 실수할 때가 있을 겁니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여러 번 느꼈던, 또는 겪게 될 그런 순간과 감정들처럼 말이죠. 그럴 때마다 힘들고 지쳐서 다 내려놓고 싶어질 겁니다. 저도 그랬었습니다. 그래도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만큼 나 자신을 다독여가며, 한 번 더 다음을 외치며 살다 보니 이렇게 새로운 여름이 다가와 주었습니다. 그러니 제 책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께도, 결국에는 도끼질을 멋지게 성공한 아들처럼 뜨거운 여름날을 닮은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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