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 오 형제』 걍귤 작가 인터뷰
『인삼 오 형제』에는 우리나라의 미적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저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표지 이미지>
『인삼 오 형제』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정말 기쁩니다.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꽤 오랜 시간, 묵묵히 기다려 주신 출판사 대표님과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금산 깊은 곳에 살던 인삼 오 형제가 어느 날, 온천탕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인간 할머니에게 들키게 되면서 일어나는 옛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저는 손발이 많이 차서 겨울이 되면 저희 어머니가 인삼과 대추를 폭폭 달여 주셨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향기가 집안에 가득했어요.
전기 포트 형식의 약탕기를 사용했는데 몸통은 갈색이었고 뚜껑이 유리여서 안에 내용물들이 잘 보였죠. 그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인삼의 모습이 어린 저에게는 꼭 뜨끈한 온천을 즐기는 듯이 보이기도 했고, 인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그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디어 스케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인삼’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리고, 왜··· ‘오 형제’인지도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옛 기억, 약탕기 속 인삼은 저에게 많은 상상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 생김새만으로도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할까요? 숲속에 사는 요정 같기도 하고, 숲이 만들어 낸 인형 같기도 하고요. 무언가 제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은,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꼭 인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인삼이’가 혼자였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다듬고, 만들다 보니 너무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서사와 볼거리가 충만한 그림책을 위해 형제로 바꾸었죠. 두 형제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 넷보다는 다섯이 좋을 것 같았어요. 독수리 오 형제도, 파워레인저도 5명이거든요.
인삼들이 온천을 좋아한다는 설정과, 할머니의 집으로 끌려온 오 형제가 밤이 되면 부엌으로 가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소재와 영감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사실, 이 그림책은 ‘쌍화탕’이 바탕입니다. 쌍화탕이 탄생하게 된 전설적인 이야기를 상상해 본 것인데요. 젊을 때는 알지 못했던, 으슬으슬 몸살기가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따끈한 쌍화탕이 생각납니다.(저만 그럴지도…;;;) 특히 추운 겨울날에 편의점에 가면 온장고 안에서 줄지어 있는 쌍화탕만 보아도 몸이 따뜻해지는 듯합니다. 마치 온천을 떠올리듯 말이죠. 몸속에 퍼지는 쌍화탕의 신비로운 기운(?)을 느낄 때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 머릿속에 그려지고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겨울철 엄마의 약탕기 속 인삼들은 어렸던 저의 꿈에 나와 손을 잡고 집 안 구석구석을 함께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잠에서 깨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약탕기 속에 누워 있던, 그래서 인삼들이 진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 기억 덕에 이 설정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초기 채색>
인간이 인삼을 처음 발견하고 그 효능을 알게 되는 과정을 작가적 상상을 마음껏 발휘해 설화의 화법으로 풀어주셨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설화와 옛이야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설화에는 민족의 전통 사상과 가치관, 정서, 문화가 담겨 있으며, 시대가 흐르면서 설화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문학이나 예술이 만들어집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 느껴지더라도, 이야기 안에 그 나라의 색깔이 묻어있거나 시대 정신이 반영되어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인삼에 대한 설화를 찾아보았는데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제가 인삼에 관한 새로운 설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하하… 그런데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니겠죠? 인삼 설화…;;)
『인삼 오 형제』 이야기 속의 캐릭터들과 배경을 보시면, 우리나라의 다양한 전통 문양과 동·식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삼 오 형제』에는 우리나라의 미적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저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초기 채색>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삼 오 형제는 산속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결말에 담긴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무분별한 포획과 파괴,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열대 우림과 생물의 다양성이 점차 줄어들면서 수많은 생명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뉴스와 기사를 통해 많이 접하며 인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은 저도 부족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물들이 사람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끝내 다른 별로 몰래 야반도주를 한다면… 지구에 사람만 남는다면 어떡해?’라고 생각해 보니… ‘있을 때 잘하자. 적당히 하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엔 저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후손들에게 더 아름다운 지구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결말에 담았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매일 인삼탕을 끓이느라 땀 흘리는 인삼 오 형제를 보고 있노라면, 작고 평범해 보였던 자연물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보탬이 되어주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평소 작가님의 일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자연물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다육이요. 정말 계속 쳐다보고 있게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러 가면, 신기하게 5개던 잎이 6개, 7개까지 늘어나 있는 것이 보이고… 물을 먹고 통통했던 다육이가 일주일 뒤쯤엔 약간 홀쭉해져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제가 필요하고 저 아니면 살 수 없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뿌듯하면서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정말 소소하지만 다육이가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키워 보지 않으셨다면 적극 추천드립니다.
책을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연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보고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어른이들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를 담고 싶었습니다. 독자분들께선 어떻게 읽으셨을까요? 그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즐겁게 읽히고,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야기였으면 했습니다.
<초기 스케치>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인삼 오 형제가 금산의 온천으로 향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신나게 걸음을 옮기며 들떠있는 오 형제의 얼굴이 마음에 듭니다. 저도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그런 걸음과 표정이 나옵니다. 신나고 설레는 몸짓과 표정을 인삼 오 형제가 잘 보여주고 있나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할머니의 가마솥 안이 금산 온천처럼 느껴지게 표현해야 했던 장면인 것 같습니다. 인삼 오 형제가 예전의 목욕 생활을 되찾고 즐거워하는, 문제 해결의 절정 같은 장면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영험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을 몽환적이면서도 밝은 채도의 색감으로 세밀하게 표현해 주셨는데요,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처음에는 리노컷으로 작업해서 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밝고 명랑하게 흘러가길 원해서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해 본 결과, 리소그래피가 제 이야기에 잘 맞더라고요.
포토샵에서 리노컷의 느낌을 구현하고 채색을 리소로 했습니다. 그렇게 작업한 그림을 스캔한 뒤에 포토샵으로 여러 기법을 추가하여 별색 인쇄하였습니다.
<초기 스케치>
그림을 그리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상상한 것들을 이미지로 잘 표현하려 노력해요. 그렇게 표현된 이미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만 느끼는 그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공감’에 민감한 이유는 제 그림이 보편적이거나 대중적인 느낌의 스케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평소에 주변에서 제 작업에 관해 마니아층이 생길 수 있는 독특한 표현과 발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조금 더, 아니,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전통적인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독특하고도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민화 기법에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한 별색과 팝아트 형식의 도트 무늬를 입히는 시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예전부터 우리나라 전통 문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의 전통 문양은 대부분이 중국을 통해 전래한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으로 다듬어지고 생활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재창조되어 다른 나라의 전통 문양과 다른 양식이 있다고 해요. 다른 나라들엔 미안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이 특히 멋지고 독창적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그 문양들을 그림책에 담아보고 싶었고 현대적인 기법과 접목해 새로운 느낌의 한국적인 그림책을 그려보고 싶어서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저에게 그림책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라고 생각해요. 판화 작가로서 여러 갤러리 전시와 아트 페어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림으로 소통해왔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분들께 깊게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우연한 기회에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알게 되었는데 제가 원하는 문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지금은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는데요. <비가, 내린다> 라는 가제로,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 시기에 제가 느끼는 비의 분위기와 색깔, 냄새, 소리 등을 글 없이 이미지만으로 표현한 그림책입니다.
<초기 채색>
“나에게 『인삼 오 형제』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바람>입니다.
사실 지금 제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요.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을 돌보고 계신 많은 자녀분의 공통적인 바람이라면, 부모님이 예전처럼 건강해지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희가 어찌할 수 없기에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죠.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겼던 인삼탕은 저에게 바람과 같아요. 엄마가 다시 건강해지길 바라는 저의 마음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독자들이 『인삼 오 형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저 즐겁게, 신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재밌고 신나는 걍귤 그림책으로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