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가는 길』 이영아, 이승희 작가 인터뷰
낯선 아빠와 관계 맺기에 성공하고 안정적인 가족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통해 승우 마음의 변화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표지 이미지>
『아빠와 가는 길』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영아) 해 질 무렵 하루 일을 끝내고 노을을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감사하다, 뿌듯하다, 행복하다 등의 감정들이 차올랐습니다.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책을 만들어 주신 출판사의 감사함을 깊이 새깁니다.
(이승희) 이전 책들이 출간되었을 때보다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어요. 동화책 삽화 작업은 처음이라 이영아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그림을 어떻게 봐주실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아빠와 가는 길』이 시작된 첫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이영아) 『아빠와 가는 길』은 이야기의 형식이 더 먼저였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중‧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어떻게 하루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이 자라고 자라고, 이 동화를 쓰게 될 때까지 자라서 결국 저도 하루의 이야기를 동화 한 편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희) 원고를 받은 게 2021년 8월인데 『가시』 작업을 한창 진행하던 때예요. 『가시』 가 출간되고 나면 일보다는 개인 작업에 집중하려고 했기 때문에 원고를 읽기 전에는 사실 고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원고를 읽다 보니 마음이 아려 왔어요. 동화를 읽으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승우의 마음에 공감이 되면서 이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승우가 아빠와 함께 새로운 집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이야기이고 실제 지명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에서는 현실적인 풍경을 담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로드뷰를 검색해서 활용했어요. 경기도 안양의 어느 아파트부터 시작해서 전북 고창의 한 카센터까지 고속도로와 국도를 따라가며 각 장면에 맞는 로드뷰를 찾아 캡처해서 스케치하고 판화로 작업했어요.
<작업 초기 기법 테스트>
이 책은 표지와 첫 장면부터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 듯해요. 『아빠와 가는 길』이란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이영아) 불안하고 두려운 세계 속에 있는 승우가 새로운 세계로 무사히 편입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여로의 상징적인 의미와 주인공이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의 표지를 그리실 때 어떤 마음으로 작업하셨나요?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승희) 책의 표지는 독자들이 가장 처음 보는 그림이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했어요. 그래서 승우와 아빠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가까워진 상태에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도록 표현했어요. 밤이 지나고 밝아 오는 하늘과 동이 트는 방향으로 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두 사람의 따뜻하고 밝은 미래를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인 승우와 아빠의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영아) 주인공의 처지가 가혹할수록 독자들의 응원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승우를 삼중고의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캐릭터도 좀 더 거칠게 표현했고요.
주인공 승우 캐릭터와 감정을 어떻게 그림으로 해석하고 표현하셨나요?
(이승희) 승우가 말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 막막함 같은 감정을 많이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겉으로 표현하기보다 속으로 감추는 것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러면서 스스로 많이 위축되었을 거예요. 그래서 앞머리를 길게 내려 표정이 잘 보이지 않게 하고, 주로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웅크리거나 하는 정적인 자세로 표현했습니다.
<캐릭터 스케치>
어린 나이에 마주한 엄마의 죽음과 낯설고 불편한 아빠와의 관계, 내면의 상처에 의한 선택적 함구증 등… 쉬이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동화로 풀어내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로서 의도하신 연출이나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이영아) 쓰면서도 승우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그렇더라도 만만치 않은 것들을 경험한 아이가 만만하지 않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어요.
(이승희) 표지 다음에 나오는 장면과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을 비슷하지만 다르게 연출해서 아빠에 대한 승우의 심리 변화를 나타내고 싶었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마음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며 얼어붙어 있던 승우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점점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주는 아빠 덕분에 불안이 점점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고개를 들고 앞으로 걸어가요. 승우를 집어삼킬 듯이 꿈틀거리던 검은 형상이 흩어져 버리고 커다란 그림자도 작아졌죠. 이제는 함께 걷고 있어서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요. 머지않아 승우가 아빠와 편안하게 대화도 나눌 것 같은 긍정적인 미래가 느껴지도록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승우와 아빠가 함께 타고 가던 트럭이 갑작스레 망가지게 되면서 하룻밤을 길 위에서 보내게 됩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빠의 트럭에 담긴 상징이나 의미를 짚어 주신다면요?
(이영아) 승우의 미래가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의외의 문제와 상황으로 표현했어요.
『아빠와 가는 길』 속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이영아) 그림을 본 후, 마음에 드는 장면이 바뀌었습니다. 36~37쪽 그림이 놀라웠어요. 장면을 정말 잘 잡으셨더군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작가님이 글보다 훨씬 뛰어나게 해석해 주셔서 경이로웠습니다.
(이승희) 어둠 속에 승우와 미루를 두고 혼자 가 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빠가 마실 물과 종이컵을 사서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요. 그런 의외의 모습에서 까칠함 속에 감춰져 있던 아빠의 섬세함과 자상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승우는 아빠가 미루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림 속 아빠의 시선 끝에는 승우가 있어요.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이 장면이 저는 참 좋았어요.
<섬네일 스케치>
그렇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이영아) 승우와 아빠의 갈등을 극대화하고 봉합하는 부분에서 독자가 좀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데 잘 안 풀렸어요. 둘 사이를 방해하는 좀 더 극적인 사건이 필요했는데, 고속도로에서 트럭을 고장 내는 정도로 처리했습니다.
(이승희) 승우가 아빠 차를 타고 떠나며 아파트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이요. 장면 전체 섬네일 작업 후 맨 처음 판화로 옮겨 봤던 장면인데, 모노타이프라는 새로운 판화에 도전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여러 판화 재료들을 테스트하며 원하는 느낌을 내기 위한 과정이 길었습니다.
승우와 아빠가 함께 나서는 ‘집으로 가는 길’의 전반적인 풍경과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하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승희)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는 데다가 낯선 아빠를 억지로 따라가야 하는 승우의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잘 표현되길 바랐어요. 전반적인 풍경은 실재하는 공간들이지만 평범하고 현실적인 풍경 속에서도 불안하고 답답하고 두렵기도 한, 그런 미묘한 감정들이 잘 느껴지게 하고 싶었어요.
<섬네일 스케치>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나요?
(이승희) 기존에 했던 동판화와 다른 느낌으로 작업하고 싶어서 판화 기법 책을 보다가 평판화 기법 중 하나인 모노타이프를 보게 되었죠. 모노타이프도 여러 방식이 있는데 저는 그 중 ‘눌러 그리기’로 작업했어요. 아크릴판을 사표로 갈아 준 후 판화 잉크를 칠하고 그 위를 종이로 덮어요. 종이 위에 밑그림을 올리고 펜이나 연필 등으로 밑그림을 따라 눌러 그리면 아래에 있는 종이에 판화 잉크가 묻으며 그림이 찍히는 방식이에요.
밑그림을 누르거나 문지르는 도구와 압력에 따라 다양한 느낌의 판화를 만들 수 있어요. 주로 펜으로 선을 만들고 연필이나 손가락, 손바닥, 바렌을 이용해 문지르며 명암을 만들었어요. 종이는 두꺼운 판화지가 아닌 얇은 한지를 사용했는데, 눌러 그리지 않은 부분들의 한지가 자연스럽게 잉크에 닿으면서 우연히 찍힌 자국들이 많아요. 두 사람 사이의 불편한 감정들로 인해 공기마저 텁텁해진 듯한 느낌이 시각적으로 잘 표현된 같아서 마음에 들어요.
독자들이 승우와 아빠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이영아) 가족으로부터 충족되는 정서적 욕구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낯선 아빠와 관계 맺기에 성공하고 안정적인 가족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통해 승우 마음의 변화를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희) 처음에는 승우 아빠가 괴팍하고 무섭기만 한 사람으로 보였어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표현은 다소 거칠지만 승우와 미루를 챙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승우는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빠 덕분에 조금씩 안정과 자신감을 찾아갈 것 같고, 거칠고 투박하기만 했던 아빠도 승우 덕분에 부드럽게 소통하는 법을 배워 갈 것 같아요. 너무 다른 두 사람이지만 서로의 결핍을 채워 주고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님들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요? 떠오르는 아버지와 나눈 기억이나 일화가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이영아) 한문을 아주 잘 쓰는 농부셨습니다. 아버지처럼 멋진 남자와 결혼하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하.
(이승희) 저희 아버지도 승우 아빠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분이셨어요.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 하나가 있어요. 고향집에서 잠깐 머물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버스를 타려고 아버지랑 터미널에 있다가 제가 탈 버스가 먼저 와서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죠. 근데 아버지가 갑자기 제가 타고 있는 버스로 올라오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밥 굶지 말고 잘 챙겨 먹고 다녀라.”라는 말만 하고는 바로 내리셨어요. 당시에는 늘 하던 말씀을 굳이 버스까지 타서 왜 또 하시나 싶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먹먹했어요.
이번 책을 작업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예상치 못하게 떠올라 그림을 바꾸게 만든 에피소드가 있었다면요?
(이승희) 동백나무가 등장하는 장면을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저희 집 고양이들 중 둘째인 레오가 작업 중인 책상 위로 뛰어올라 온 거예요. 그래서 레오가 밟고 지나간 자리에 발자국 몇 개가 찍혀 버렸죠. 순간 화가 좀 났지만 내 잘못이다 하며 웃어넘겼어요. 장면에 방해가 많이 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재미도 있어서 그냥 둘까도 했는데 결국은 편집할 때 지웠어요.
<동백나무 모노타이프 테스트>
다음으로 새롭게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영아) 늑대 이야기를 2년 가까이 쓰다가 일단 묵혀 두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개를 키우고 싶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승희) 아직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없어요. 만약 또 다른 작업을 한다면 또 모노타이프로 하고 싶어요. 초기에는 이 책의 그림에 포인트로 색을 넣어 보았는데, 생각만큼 색 표현이 잘 되지 않아서 결국 흑백으로만 완성했어요. 그게 좀 아쉬워서 다음에는 색을 잘 넣어서 다른 분위기의 모노타이프 작업을 해 보고 싶네요.
<섬네일 스케치>
전작 『미미와 나』와 『가시』는 모두 작가님께서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이었던 반면, 『집으로 가는 길』은 이영아 작가님과 협업한 동화책이었는데요, 첫 동화 작업을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희) 좋은 이야기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그림만 작업하다 보니 사실 이전 작업들 보다 섬네일 스케치는 수월했어요. 종이나 잉크,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 등을 테스트하는 과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어려웠지만요. 이영아 작가님의 담담하고 절제된 문체에 어울리는 장면들을 만들 수 있을지도 걱정되긴 했어요. 이런 점들이 초반에는 좀 어려웠지만 작업 과정에서는 그림들로 인해 이야기가 이미 품고 있는 감동이 조금 더 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에게 『아빠와 가는 길』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이영아) 나에게 『아빠와 가는 길』은 ‘군불’입니다. 어쨌거나 제가 계속 ‘쓰도록’ 일으켜 세워 준 작품입니다.
(이승희) 나에게 『집으로 가는 길』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주로 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 작업을 하는 것이 큰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해 온 판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판화 기법을 혼자서 다듬어 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흔치 않은 판화 기법을 선보이고 작업을 잘 마무리해서 기쁘고 뿌듯해요.
마지막 장면에 담고 싶으셨던 의미와 함께, 이번 책을 통해 어린 독자와 어른 독자에게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도 듣고 싶습니다.
(이영아) 마지막 장면에서 승우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아빠와 가는 길』을 읽는 독자분들의 현재와 미래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든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희)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주고 믿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큼 든든하고 힘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싶어요. 승우를 함부로 대하던 아빠가 나중에는 승우의 표정만 보고도 생각을 읽게 되는 모습은 참 놀라워요. 아주 현실적인 동화지만 그런 기적 같은 변화 덕분에 마치 아름다운 판타지 한 편을 읽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외롭고 불안하게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독자들이 계시다면 그들의 삶에도 이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끝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을 때,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꼭 나타나 더는 외롭지 않기를 바라요. 마침내 같은 속도로 함께 걷기 시작한 승우와 아빠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