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매달려요

글 | 이지수 | |||||
그림 | 이지수 | |||||
발행일 | 2025-06-23 | |||||
ISBN | 9791193138762 77810 | |||||
형태 | 양장 210x270mm 44쪽 | |||||
정가 | ₩17,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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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무언가에 매달려요
당연한 듯 매달리던 그것으로부터
나를 놓아주는 어떤 날의 이야기
이 손을 놓으면 큰일이 날지도 몰라
원숭이 꾸꾸는 오늘도 매달려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어도, 바람이 몸을 세차게 흔들어도,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나뭇가지를 쥔 손을 놓지 않아요. 힐끗, 자신의 두 발 아래, 우거진 정글 숲에 가려져 까마득한 지면과 눈이 마주칠 때면, 나뭇가지를 움켜쥔 꾸꾸의 두 손엔 더욱 힘이 들어갔어요.
왜 그토록 매달리냐고요? 원숭이는 원래 나무에 매달려야 하니까요. 꾸꾸가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전부터 원숭이들은 매달려 왔으니까요. 정글이라는 먹이 사슬의 한복판에서, 매달려야 살아남는 원숭이들에게 매달림은 불안에서 비롯된 집착도, 강박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무 의심 없이 이어진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요.
그런 꾸꾸의 곁으로, 종달새 친구 후리가 작은 날개를 포르르 펼치며 다가왔어요. 그리고 후리는 꾸꾸에게 말하죠. 이 ‘멋진’ 나무에 둥지를 짓겠다고요. 그제야 꾸꾸는 문득, 자기가 매달려 있던 이 나무의 생김새를 처음으로 찬찬히 떠올려 봅니다. 언제나 꼭 붙들고만 있었지, 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냄새를 품고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어느 날, 오래도록 이어지던 꾸꾸의 매달리기에 조금씩, 아주 조용하게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굳어진 나날들을 흔들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사랑의 힘
후리의 바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꾸꾸가 눈을 뜨자, 어느덧 후리는 밤새 둥지를 다 짓고 예쁜 알을 품고 있었어요. 알을 처음 본 꾸꾸의 두 눈은, 후리의 빛나는 알들처럼 반짝였죠. 후리는 자신의 아가들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올 때까지 알들을 잘 지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사랑을 가득 담아 알들을 꼭 안아 주었죠.
그런데 바로 그때, 굵은 빗방울이 꾸꾸의 손끝에 톡, 토독, 닿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번개가 번쩍이더니 우르릉 쾅쾅,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어요. 매섭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두 손은 미끄러지고 온몸이 휘청였기에 꾸꾸는 나뭇가지를 더욱 세게 붙들었지요. 후리는 있는 힘껏 둥지와 알들을 감싸들었고요.
그러나 매정하게도 비바람은 너무나 매섭게 몰아쳤고, 부서진 나뭇가지 하나가 후리와 둥지를 덮친 그 순간,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알들은 하염없이 낙하했고, 후리는 작은 날개를 다급히 퍼덕이며 떨어지는 알들을 따라 허공을 향해 곤두박질쳤습니다. 온몸으로 날아드는 후리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말로도 다 담기지 않을 절박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꾸꾸의 가슴에 거센 진동이 일었습니다. 몸이 기억해 온 그 오랜 매달림, 익숙함으로 굳어 있던 매달림이 조용히 무너졌지요.
꾸꾸의 고민은 길지 않았고, 마침내, 처음으로, 꾸꾸는 두 손을 놓았습니다.
움켜쥔 것들을 놓았을 때
비로소 펼쳐지는 두려움 너머의 세계
후리의 간절함에 동하여 몸을 던진 꾸꾸는 곤두박질치는 알들을 기적처럼 받아 냈습니다. 후리는 허둥지둥 꾸꾸의 곁에 내려앉았고, 두 존재는 숨을 고르며 눈을 맞췄지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들이 눈가에 고였지만, 그 안엔 분명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꾸꾸는 발끝에 전해지는 낯선 감각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처음 밟아본 땅. 촉촉하고 차가운, 비에 젖은 풀이 발바닥을 간질였습니다. 그 낯선 감촉은 조용한 인사를 건네는 듯, 꾸꾸의 심장을 조심스레 두드렸어요. 그때 꾸꾸는 알았습니다. 놓는다는 것은 끝이 아니었다는걸, 놓음으로써 매달리는 대신, 디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요.
아직은 서툴고 어색하지만, 꾸꾸는 그렇게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을 조심스레 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떨림과 설렘,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발끝으로, 나무가 아닌 땅 위에서 말이지요.
내가 매달려 있던 이 나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 의심 없이 매달려 있었기에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살아온 시간들이 있습니다. 나무였든, 성적이었든, 인정이었든, 누군가의 기대였든, 아니면 ‘이래야만 해’라는 말 없는 명령이었든, 우리는 다들 무언가에 매달린 채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건 때로 생존이었고, 때로는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지수 작가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 하나를 꺼내 놓습니다. 당신이 매달려 있는 그것, 그것을 움켜쥔 두 손을 놓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나는 오늘도 매달려요』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꾸꾸가 그랬듯, 우리도 언젠가 나도 모르게 매달려 있던 무언가를 처음으로 찬찬히 바라보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손을 놓을지, 말지를 새롭게 결정하게 될지도요. 물론 놓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놓는 일이 언제나 옳은 선택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매달림을 인지하는 그 순간부터, 매달림은 맹목이 아니라 의미가 되고, 선택이 되지요. 이지수 작가는 이러한 고요하지만 강렬한 전환의 순간을 ‘나무에 매달리는 원숭이’에 빗대어, 세상에 내어놓는 첫 그림책에 담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작가 소개
글‧그림 이지수
마음속 깊이 차오르는 감정들을 이야기로 그려 내려 합니다. 그 이야기가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