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를 닮은 아이』 전광섭, 양양 작가 인터뷰
점점 물질화되고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 어린이들만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표지 이미지>
『달항아리를 닮은 아이』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전광섭) 오랫동안 기다려 왔기에 무척 기쁩니다.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기대합니다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양양) 작업 중인 책들이 많은데 그중에 실로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책입니다. 그래서 반갑고 그렇습니다.
『달항아리를 닮은 아이』는 도자기를 빚듯 섬세한 손길로 마음을 빚고 관계를 맺어 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간이 흘러도 지지 않는 사람의 인연과 진심을 이야기하는 동화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전광섭) 요즘은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어린 손자 손녀들의 세대가 단절된 듯해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어린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을 나누기보다 계산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어울렸다 헤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타인과의 소통과 배려, 사랑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초기 채색>
『달항아리를 닮은 아이』 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양양) 제가 어렸을 때 봤던 《흙꼭두장군》이라는 만화 영화가 생각났어요. 그림의 방향은 캐주얼하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이 담겨 있는 수채화로 가 보자고 생각했고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전광섭) 이 세상에는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이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경준이와 더불어 할아버지와 혜인이, 호석이 등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캐릭터를 구상하시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실까요?
(전광섭) 할아버지와 혜인이는 주인공 경준이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작품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압축시킨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호석이는 경준이와 일상을 함께 하면서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잘 형상화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색채와 시처럼 여운 깊게 묘사된 그림들이 아름답습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양양) 아이패드를 이용해 디지털 채색을 했습니다. 처음 채색본이 나왔을 때는 채색의 톤과 장면 구성이 좀 더 추상적이고 낮게 가라앉은 느낌이라는 의견을 받고, 한 차례 더 (작업을) 진행하여 책에 실린 그림들이 나왔습니다.
<초기 채색>
<완성 채색>
작품 속 주변 풍경과 공간 묘사가 섬세하게 펼쳐집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장면들을 구상하시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실까요?
(양양) 일반적으로 이들이 살고 있는 주거 환경이 아파트가 있는 도시이긴 하지만 뭔가 밀집된 도시의 풍광은 아니어서, 마당의 묘사라든지 정원수의 그림자 같은 것 위주로 분위기를 살린 것 같아요.
특히 공감하며 상상하고 그린 캐릭터나 장면이 있으세요?
(양양) 아무래도 경준이인데 처음에는 좀 깊고, 차분한 느낌의 아이로 묘사한 것 같아요.
<경준 캐릭터 초기 구상>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전광섭) 독자분들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만 제 마음에 가장 드는 장면은 결말 부분입니다. 할아버지가 경준이에게 유자차를 권하시지만, 여느 때와 달리 경준이는 페퍼민트 차를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건 감각적인 것만을 추구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경준이가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양양) 책 속의 첫 번째 펼침 장면입니다. 보통의 책들에 실린 그림에서는 인물들의 특정한 행동이나 장면의 주된 사건 같은 부분을 많이 묘사하는데요. 이 장면은 정지된 풍경 묘사만으로 따뜻하고 애틋한 분위기가 잘 드러난 것 같아요.
<채색 장면>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전광섭) 제가 동화를 쓰면서 늘 고민하는 부분인데요, 주인공과 친구들의 학교생활입니다. 저도 예전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최근까지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간접적인 방법과 상상력을 동원하는데,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걱정이 됩니다.
(양양) 할아버지가 군중 속에서 춤추는 장면이요. 할아버지의 춤사위가 어떤 모습일지 그려 내기가 좀 어려웠어요. 움직이는 그림이 아닌 정지된 한 장면으로 그려야 했기에 할아버지의 어떤 마음이 잘 드러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초기 스케치>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가 경준이에게 들려주시는 주옥같은 이야기와 문장들이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에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깁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은 사라지지 않고 어디엔가 남아 이어진다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작가님에게도 이 작품에 담아 널리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전광섭) 점점 물질화되고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 어린이들만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양양) 널리 전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림으로 말과 생각을 함축하다 보니 앞으로 남겨질 제 그림에도 그런 제 성정이 색채를 잃지 않고 잘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혜인이의 도자기와 옛 은인 도예가의 달항아리처럼 어느 물건 안에 깃든 마음을 읽어 내는 할아버지의 사려 깊은 손길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할아버지를 꼭 닮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데요. 작가님의 소중한 물건과, 그 안에 깃든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전광섭)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데도 아버지께서 사 주신 하모니카를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가끔 불고 있습니다.
(양양)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오렌지색 모자가 있어요. 양옆으론 귀를 덮을 수도 있고 평소에는 안쪽으로 넣어서 일반 모자처럼 쓸 수 있는 캠프캡인데요. 지금은 잘 안 쓰지만, 그 모자를 쓸 때마다, 그 모자를 썼던 지난 날들이나 그간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올라서 특별해요.
<초기 스케치>
『달항아리를 닮은 아이』는 팔달산 기슭, 오래전에 세워진 전통 문화재와 연못, 화홍문과 화성행궁 등 정겹고도 생생한 공간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이처럼 실제 수원이란 공간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광섭) 달항아리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소재와 어울리는 배경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독자분들이 이 동화책을 읽으신다면 차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문화재를 직접 돌아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세요?
(전광섭) 할아버지의 과거와 주인공의 현재를 어떻게 연결하는지가 제겐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양양) 구성을 단순하게 가져가면서도 색채나 장면의 분위기에서 풍부한 질감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채색 작업>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궁금합니다.
(양양) 특별한 건 아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달항아리를 보고 온 것이요. 책 속 달항아리를 유심히 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그때 제 모습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
<초기 채색>
이 책은 어린 독자에게는 표면적인 모습 아래 속 깊은 내면으로 다가가는 용기를, 어른 독자에게는 시간을 건너온 세월 속 진심과 인연의 무게를 되새겨 주는 이야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책을 읽을 세상의 많은 경준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전광섭)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직 어린 초등학생들일 텐데요, 현실은 힘들고 고달픕니다. 그렇다고 그 안에 즐거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즐거움 중 하나가 우리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세상과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리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 어려울 수 있지만, 단순히 외형적인 면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그런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미보다 깊이 있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지요. 물론 재미있으면서도 깊이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요.
(양양) 작은 물건이든, 혹은 작은 인연이든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면 언젠가 그것이 자신에게 다정한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라 말해 주고 싶어요.
작가님은 오랫동안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내오며 다양한 동화와 글을 써 오셨지요. 작가님의 글쓰기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전광섭)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이나 아직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은 어른 독자들이 제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기쁨을 느끼기를 바라며 쓰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구상 중이신 작품이 있으신가요? 앞으로는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전광섭)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가족이 해체된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남매간의 우애를 주제로 한 동화입니다.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으로 태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양양) 조금 긴 호흡으로 독자들과 마주할 수 있는 만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초기 채색>
“나에게 『달항아리를 닮은 아이』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전광섭) ‘선물’.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면 어떤 힘이 우리 자신에게 기회와 능력을 준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체험을 너무도 많이 했기 때문에 믿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 앞에 어떤 고난과 절망스러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반드시 기회와 능력이 주어집니다. 종교인들은 그걸 신의 섭리라고 하고 심리학자들은 우리 내면의 힘이라고 하겠지요. 그 이름이야 어떻든 그런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양양) ‘바로 너’.
독자들이 『달항아리를 닮은 아이』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광섭) 겉으로 드러난 글자만 읽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생각하며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즉흥적인 즐거움에만 지나치게 빠지지 말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세상을 멀리 넓게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