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이별 이야기』 윤경, 이다솜 작가 인터뷰
우리의 슬픔은 차고 시린 눈처럼 무늬도 크기도 다르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슬픔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표지 이미지>
『용감한 이별 이야기』가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윤경) 여러 계절을 지나는 동안,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어떤 감정을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책’이라는 형태로 만나는 일은 묘한 기분이 들게 해요. 영화 <E.T.>(1982)에서 꼬마 엘리엇과 외계인 이티가 손가락을, 그것도 단 하나의 손가락을 서로 맞대는 순간 일어나는 낯선 세계, 낯선 존재와의 교감처럼 말이죠. 분명 제 안에서 몇 번이고 그리고 그렸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가 책이라는 모양을 갖추면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익숙하고 비슷하지만 달라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는데, 책에는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편집자님과 그림 작가님, 책을 함께 만드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녹아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녹아든다는 건, 더하기 빼기의 문제가 아니라 화학 작용처럼 다른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마녀의 솥단지에 온갖 진귀한 재료를 쏟아 넣고 주걱으로 저으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펑! 마법의 묘약이 만들어지는 것처럼요.
(이다솜) 실감이 안 나요. 오랫동안 그림의 곁에 있었지만, ‘내 그림으로 책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함께 있었어요. 막상 책을 손에 쥐고 나니 감사하고, 뿌듯하고, 찡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왔다 갔다 합니다!
『용감한 이별 이야기』의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윤경) 이 이야기를 쓴 해에 두 가지 사건이 저에게 일어났어요.
하나는 초봄에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병원에 15분 늦게 도착했고,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요. 늦은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어도 너무나 많은 감정이 북받쳐서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습관처럼 아빠 손이랑 팔을 주물렀어요.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팔꿈치를 지나는데 팔 안쪽에서 온기가 느껴졌고, 그 온기가 마치 아빠가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건네는 작별 인사 같았어요. 그때 제 안에서 뭔가가 일어났어요. 엉켜 있던 감정들이 녹아내리면서 입 밖으로 ‘아빠’라는 말이 소리가 되어 나왔어요. 그 순간이 각인처럼 마음에 새겨졌고요.
다른 하나는 가까운 글벗과 함께 살던 반려견의 죽음이었어요. 반려견은 그 집 아이가 어렸을 때 가족이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노견이 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그 과정 동안 온 가족이 마음 아파하고, 떠나고 나서도 여전히 큰 슬픔이 이어졌어요.
이 두 가지 슬픔이 여러 계절을 지나는 동안 제 마음 안에서 실처럼 엮어졌고, 어느 날 이야기로 태어났어요.
<캐릭터 스케치>
겨울이와 떼굴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경) 떼굴이 캐릭터는 ‘떼굴’이라는 이름, 생김새, 행동이 거의 동시에 찾아왔어요. 제 안에 있던, 제가 기억하고 싶은, 또는 그러길 바랐던 아빠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떼굴이라는 캐릭터에 반영된 것 같아요.
겨울이 캐릭터는 이름에 나름 재미난 스토리가 있어요. 이야기의 후반에 가서야 엄마가 “겨울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독자가 아이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잖아요. 실은 작가인 저도 그 지점까지 쓰고 나서야 이름을 알 수 있었어요.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짓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쓰다가 엄마가 주인공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아, 이 아이 이름은 겨울이구나. 겨울이어야만 하는구나.’ 하고 번뜩 떠올랐어요. 두렵고 피하고만 싶은 순간이지만 결국은 만나야 하는 마지막, 그리고 그 마지막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 용기를 내어 도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계절의 마지막인 겨울이라고 지었어요. 복합적인 다른 의미들도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할게요. ^^;;
『용감한 이별 이야기』 원고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는지, 그림의 방향을 어떻게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다솜) 원고를 받아 들고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마음 아픈 이별 이야기인데도 따뜻함과 다정함이 물씬 느껴져서 더 뭉클했고요. ‘아, 이건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조용한 직감 같은 것이 몽실몽실 올라왔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읽자마자 느꼈던 잔잔한 울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따뜻함, 담담함 같은 것들을 염두하며 스타일을 잡았습니다.
『용감한 이별 이야기』 속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윤경) 삽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을 말하고 싶어요. 처음 이다솜 작가님의 삽화를 보았을 때 그 사랑스러움에 푹 빠져 버린 장면인데, 떼굴이와 겨울이가 천둥소리에 놀라 침대 아래에 숨는 장면이에요. 떼굴이와 겨울이의 발바닥 보셨나요? 그리고 꼬마 다람쥐와 눈사람이 사이좋게 앉아서 머루를 먹는 장면, 올려다본 밤하늘에 도토리 별자리. 후반부에 겨울이가 떼굴이와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연결점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할아버지의 뒷모습 아래 떼굴이를 닮은 그림자. 사실 더 많은 장면이…. ^^;;
(이다솜) 개인적으로 다람쥐와 눈사람 이야기 중에, 다람쥐와 눈사람이 머루를 나눠 먹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그리면서도 귀여워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그렸답니다. 작고 평화로운 순간이지만 사실 읽는 사람은 좀 안타까워지는…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장면이라 계속 기억에 남네요.
<초기 섬네일>
그렇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윤경) 마지막 장면이에요. 마지막 장면은 분량은 짧지만, 퇴고 마지막까지도 고민이 많았어요. 감정적인 부분에 압도되지 않으면서 그 순간을 진실하게 그려 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과하거나 덜하지도 않게 속도와 무게를 조절하느라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다솜) 떼굴이와 겨울이의 애틋한 마지막을, 어떻게 그려 낼지 굉장히 고민했어요. 이야기 전체적으로 이 잔잔하고 따뜻한 이별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심하며 작업했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마음에 오래오래 남기를 바랐습니다. 단순히 슬픔만 느껴지는 그림이 아니었으면 했어요.
이별을 앞두고, 겨울이가 낯선 할아버지를 통해 떼굴이의 마음을 만날 수 있도록 설정을 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그와 더불어 ‘다람쥐와 눈사람’이라는 이야기 속 이야기를 구상하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윤경) 작업할 때 보통은 여러모로 준비 과정을 거치지만, 이 작품은 ‘써야겠다.’ 생각하자마자 단숨에 써 내려갔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그해 추석 이틀 전 저녁이었는데, 멍하니 앉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아, 이제 집에 가면 아빠가 없구나. 아빠 없이 맞는 첫 추석이구나.’ 그러고는 갑자기 컴퓨터를 켜고 첫 문장을 쓰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까지 썼어요. 이 세 개의 문장을 쓰고 나서 ‘어떻게든 이 이야기는 완성하겠구나.’ 예감이 왔어요. 그 밤에 이야기의 90%를 바로 썼고요. 나머지 10%는 다음 날 추석 음식을 끝내고 마무리했어요. 그래서 딱히 구상이나 구성이랄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때 쓴 초고가 무척 평이하고 단조로웠어요. 이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야기 속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방법은 알겠는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인지를 찾아야 했어요. 그 와중에 눈의 의미에 대해서만 종일 생각한 날이 있었는데, 며칠 후에 다람쥐와 눈사람 이야기가 절 찾아왔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서 제 눈앞까지 뚜벅뚜벅 걸어온 것처럼요. 저는 이 짧은 이야기가 겨울이와 떼굴이의 이야기를 반영하면서도 개별적인 존재로 온전한 이야기가 되게, 진실하고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게 다듬고 쓰기만 하면 됐어요. 아마 수십 번쯤요.
<초기 스케치>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나요?
(이다솜) 디지털로 작업했습니다. 연필, 색연필, 수채화의 질감이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도록 했어요.
‘이야기 속 이야기’를 오가며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와 가을과 겨울을 넘나드는 계절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다솜) 이야기와 계절의 변화를 분명히 느끼도록 하면서 동시에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표현하는 것이 과제였어요.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색감을 유지하지만 겨울은 조금 차갑게, 가을은 아주 따뜻하게 색감을 사용했고, 선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어요.
<채색 테스트>
겨울이와 떼굴이의 작별 인사를 담은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에 담긴 애틋하고도 따스한 온기가 마음을 뭉근히 적셔 오는 것만 같습니다. 결말 장면을 그리며 작가님께서 담고자 했던 마음이나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다솜) 이별은 어른이 된 저에게도 낯설고 어려운 경험이에요. 크고 작은 이별 앞에서 늘 겁이 났고,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쓰러지셨는데, 제가 알던 아빠의 기억과 이별해야 했어요. 어떤 분기점이 지나도 일상은 그냥 똑같이 이어지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변화를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하고요.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커다랗게 다가오는 감정일 테지요. 그래서 더 담담하게, 그렇지만 다정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감정 앞에서,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그림이기를 바랐어요.
다음으로 새롭게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윤경) 동화를 쓰려고 했을 때, 가장 처음에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리고, 오래된 기억을 담은 이야기예요. 올여름 초고를 완성하는 게 목표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언젠가 이 이야기도 독자와 만나는 순간이 오길 소망하고 있어요.
<표지 아이디어>
“나에게 『용감한 이별 이야기』는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윤경) ‘작별 인사’ 또는 ‘따뜻한 안녕’.
(이다솜) 용기의 연습.
마지막으로, 『용감한 이별 이야기』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윤경) 슬픔의 모양을 들여다본 적이 있어요. 그러다 알게 되었어요. 슬픔에는 후회하는 마음과 자책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이 불순물처럼 함께 있다는 걸. 그래서 온전히 슬픔과 마주할 수 없다는 걸. 나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은, 그리고 우리의 슬픔은 차고 시린 눈처럼 무늬도 크기도 다르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슬픔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그러니 부디, 용기 내어 따뜻한 안녕에 도착하길 바랍니다.
(이다솜) 누구나 이별이 버거울 때가 있어요. 이 책이 그 순간을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