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가을이불』 박광명 작가 인터뷰
하루하루를 무언가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표지 이미지>
『토닥토닥 가을이불』이 출간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가 그림이라는 실로 엮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토닥토닥 가을이불』의 거미 씨처럼 부지런히 그린 작품이라 마감하니 뿌듯합니다.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준 습작 – 낙엽을 덮은 여인>
가을이란 계절의 풍경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하는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습작으로 낙엽을 덮은 여인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지친 영혼들이 낙엽을 덮고 쉬어 가는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겨울, 봄, 여름을 지나 온 세상이 알록달록하게 변해 있는 가을은 우리에게 잠시 쉬어 가라고 말하는 축제와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무언가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숲속의 다양한 생명들을 살피어 주는 주인공 거미 씨는, 마치 계절과 순리에 맞추어 만물을 짜고 엮는 힘을 지닌 신비한 존재 같기도 합니다. 거미 씨 캐릭터에 담고 싶으셨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세상을 이루는 작은 것들에 주목해 봤어요. 세상에 없으면 안 되지만,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자연을 이루는 작은 것들을 위로하는 존재로 거미 씨를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채색 과정>
지쳐 쉬고 싶은 나뭇가지 씨, 집을 잃어버린 뿌리 씨, 자그마한 열매와 씨앗들까지… 이처럼 다채로운 사연과 개성을 지닌 자연 요소들을 캐릭터로 구상하시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을까요?
산책을 할 때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돌 등에 주목했어요. 정돈된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캐릭터들에 눈, 코, 입이 있어서인지 결국은 귀여워졌지만요.
이야기 속에서 특히 공감하며 상상하고 그린 캐릭터나 장면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가을이불을 찾으러 온 손님들이 거미 씨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이에요. ‘문’은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문이 열리면서 손님과 나의 세계가 연결되죠.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손님에게서 느껴지면서 손님을 공감하게 돼요. 마치 발레리나의 발이나 장인의 손을 봤을 때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처럼요 그 사람의 몸을 보면 세월을 알 수 있죠. 거미 씨는 그러한 세월의 모습을 보고 손님들에게 수고했다고 토닥이게 돼요.
<학교 가는 모습을 추억하며 그렸던 습작>
가을이란 계절에 깃든 특별한 기억이나, 독자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작가님만의 추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삼청동에서 18년 정도 살았는데요.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노란색 낙엽 잎이 떨어져서 노란 길을 만들어 줘요. 그 길을 걸으며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오곤 했죠. 그때는 지금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아서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었죠. 어렸지만 사색 같은 걸 하면서 걸었던 거 같아요. 여유롭게 계절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은 제게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책을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계절이 바뀌면 그 계절을 즐기려고 온몸으로 노력하는 거 같아요. 의도적일지라도 내가 생각했던 계절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죠. 『토닥토닥 가을이불』 안에 제가 느끼고, 보고 싶었던 편안한 가을을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계절이 되어도 가을이 그립다면 이 책을 열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채색 과정>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그리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을까요?
작은 친구들이 바람 씨에게 낙엽을 덮어 주는 장면이 가장 좋습니다. 초반부터 구상했던 장면이기도 하고요. 작은 것들의 힘으로 초월적인 존재인 바람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서로 기대어 체온을 나누는 모습은 이 책의 메시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아요.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은 무엇일까요?
바람 씨에게 가을이불을 덮어 주는 장면이 어려웠던 거 같습니다. 바람을 뚫고 이불을 덮어 주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바스락바스락 낙엽의 질감과 비에 젖은 숲의 냄새가 코끝에 물씬 풍기는 듯 자연의 냄새를 가득 묻힌 그림체가 인상적입니다. 어떤 재료와 기법, 효과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셨어요?
이번 책을 작업하면서 집중했던 점은 ‘일기장 같은 책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주변에서 구하기 가장 쉬운 재료인 연필과 색연필로 작업했습니다. 조금 둔탁하게 그려진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사람을 편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눈으로 보기에 편안한 색연필의 따뜻한 감성이 그림에서 느껴졌으면 했어요.
<구상 노트>
이번 작업 과정에 있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꼭 지키는 작업 루틴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오전에는 작업실에서, 저녁에는 집에서 작업했어요. 아이의 주 양육자이기도 해서 육아를 마치고 가볍게 리프레쉬를 한 후에 작업했죠. 숙제를 끝낸다는 마음이 아닌 그림 속에서 기쁘게 즐기는 마음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웃는 캐릭터를 그리면 저도 웃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모든 친구들이 무해해서 제 마음도 정화됐어요.
『토닥토닥 가을이불』은 『여름 상상』을 잇는 작가님의 두 번째 계절 시리즈 그림책입니다. 이처럼 동물과 자연, 계절을 생생하게 그림책에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식물의 모습과 동물의 모습 그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이 생긴 것은 없죠. 그것이 참 신비롭고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는 일은 저에게는 ‘소확행’입니다. 계절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올가을이 다르고 작년 가을도 다르죠. 그런 작은 계절의 변화들을 감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절에 느끼는 행복의 기억을 담아내는 일이 저에게는 소중해서 계절 책을 이어가고 있어요.
<채색 과정>
뜨겁게 달구어진 일상을 펭귄 친구들과 함께 속 시원하게 식혀 낸 『여름 상상』에 이어 두 번째 계절 그림책을 작업하시면서,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나 새로운 변화가 있으셨나요?
이번 책은 『여름 상상』 책보다 여백을 더 할애해서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했고요. 외각 라인도 일부러 더 부드럽게 작업해서 더 편안한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작가님은 그동안 다양한 그림 작업을 이어오셨지요. 작가님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님의 그림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면 숙련이 된다고 하는데 저는 그림책에 있어서는 숙련이 되고 있진 않은 거 같아요.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고요. 제가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니깐 함께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순간이 오더라고요. 지금은 그림책은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이자 제가 말하고 싶은 언어이고,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채색 과정>
다음으로 준비 중이신 계절 시리즈 그림책에 대해 간단한 소개나 힌트를 귀띔해 주신다면요?
이제 봄과 겨울 이야기가 남았네요. 많이 다루는 소재지만 그만큼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요소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습작으로 다루고 있던 겨울 이야기를 먼저 풀어내 볼까 생각합니다. 이제 겨울이 오니깐요! 그리고 그동안은 어느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향으로 이야기했던 계절과 달리 새로움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찬 봄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나에게 『토닥토닥 가을이불』은 ( )이다.” 빈칸에 어떤 말을 넣고 싶으세요?
‘모처럼 주어진 휴가.’
<채색 과정>
독자들이 『토닥토닥 가을이불』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선, 제 책을 봐 주시고 인터뷰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무언가를 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닌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작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자연은 사람보다 훨씬 부지런합니다. 멈춰있는 듯해도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깐요. 우리의 세상은 그런 작은 수고가 모여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요. 그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크게 평가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을 이루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독자분들도 혹독한 계절을 지내 오시느라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토닥토닥.